FC-BGA는 조 단위 투자 필요한 '쩐의 전쟁'
일본 이비덴 등은 업체별로 수조원씩 투자
국내 업계는 추정치까지 더해도 약 3조원
2022-01-10 이기종 기자
국내 반도체 기판 업계가 고부가 제품 FC-BGA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해외 선도업체와 격차를 좁히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 이비덴 등은 업체별로 수조원씩 FC-BGA에 투자 중인데, 국내 업계 투자는 추정치까지 더해도 모두 3조원 내외에 그친다는 점에서다. 코로나19 지속으로 원자재·장비 수급이 원활치 않아 후발주자는 불리하다.
10일 복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플립칩(FC)-볼그리드어레이(BGA) 분야에서 국내와 해외 선도업체 사이 기술격차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FC-BGA는 PC나 서버 등에 사용하는 고부가 반도체 기판이다. 이 분야에선 일본 이비덴과 신코덴키 등이 앞서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2020년 이후 FC-BGA 신규 투자계획을 밝힌 국내 업체는 삼성전기(1조100억원·베트남 사업장)와 대덕전자(4000억원), 코리아써키트(2000억원) 등이다. 아직 공식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LG이노텍도 FC-BGA에 1조원 내외 투자할 것으로 본다. 삼성전기가 추가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또 다른 고객사용 FC-BGA 투자와, LG이노텍 투자 추정치를 모두 더한 국내 업계 FC-BGA 투자규모는 3조원 내외다.
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FC-BGA는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쩐의 전쟁'"이라며 "일본 이비덴과 신코덴키, 대만 유니마이크론, 난야, 오스트리아 AT&S 등은 업체별로 수조원씩 FC-BGA에 투자하고 있는데, 국내 기판 업계는 예상 투자까지 더해도 3조원 내외에 그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비덴 등이 이미 업체별로 FC-BGA에 수조원씩 추가 투자한 상황에서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투자규모로는 선도업체와 격차를 좁히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삼성전기는 FC-BGA 투자 결정(지난해 12월)이 늦었고, LG이노텍은 아직 투자계획을 최종 확정하지 못했다"며 "FC-BGA 공급부족에 따른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수혜폭은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덕전자가 4000억원, 코리아써키트가 2000억원을 FC-BGA에 투자하지만, 이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적합한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는 수준"이라며 "FC-BGA 선도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국내 업체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두 곳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코로나19 지속에 따른 원자재·장비 수급난으로 후발주자는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주요 FC-BGA 업체 중심 과점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업계에선 FC-BGA 시장을 국가별로 보면 일본과 대만이 가장 앞서고, 다음으로 오스트리아, 한국 순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인텔 등이 반도체 패키지 기판 공급망 확보에 혈안이 돼 있던 지난 2020년 말과 2021년 초에 국내 업계가 신속하게 투자하는 것이 좋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인텔은 최근 삼성전기의 FC-BGA 신규 투자규모에 대해서도 작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AT&S는 2025년까지 세계 3대 FC-BGA 업체가 되겠다고 지난해 10월 밝혔다. AT&S는 앞서 중국 충칭에 첫번째 FC-BGA 공장을 설립할 때 관련 기술이 없었지만, 선제 투자를 조건으로 잠재 고객사인 인텔에서 기술과 인력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AT&S는 이번에도 신속하게 FC-BGA에 조 단위 투자를 결정했다.
한 부품회사 관계자는 "AT&S는 고객사가 필요할 때 신속하게 투자하면서 지원을 이끌어냈고, 이번에도 투자가 빨랐다"며 "결국 국내 업계 투자가 느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016년 AT&S는 17개월에 걸친 고객사(인텔) 승인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국내 업계의 신중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가 베트남에서 FC-BGA 사업을 하려면 엔지니어가 400명은 필요할 텐데 국내에서 이러한 인력을 구하긴 어렵다"며 "이비덴 등 주요 FC-BGA 업체가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삼성전기가 공격적으로 투자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FC-BGA가 신사업인 LG이노텍은 고객사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