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개발조직 넘겨달라"는 LX그룹 요청 거절한 LG그룹
LX세미콘, 지난해 하반기 LG전자에 'SIC'센터' 양도 요청
LG전자는 메타버스, 자율주행 신사업 추진 위해 요청 거절
2022-02-07 장경윤 기자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LX그룹 계열사인 LX세미콘(전 실리콘웍스)이 지난해 하반기 LG전자의 SIC센터 인력과 자산을 이관해줄 것을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SIC센터는 LG전자에 있는 유일한 반도체 관련 개발조직이다.
LX그룹은 휴대폰 사업을 접은 LG전자로부터 SIC센터를 양도받아 모바일AP와 전력반도체 분야 설계역량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LG전자는 향후 메타버스 및 자율주행 등 미래사업 준비를 위해 SIC센터 양도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LX의 양도 요청을 거부한 건 LG그룹 고위 경영진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X세미콘은 지난해 하반기 LG전자에 SIC센터 인력·자산을 통째로 양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LX그룹 핵심 관계자가 LG전자에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IC센터는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의 연구개발 조직이다. 모바일 AP, DTV(디지털TV)용 SoC 등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한다. 지난해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한 이후에는 주로 가전제품용 SoC를 설계해 TSMC에 외주제작을 맡기고 있지만, 모바일AP 등 반도체 설계역량도 그대로 보유 중이다. 2017년부터 LX세미콘을 이끌고 있는 손보익 LX세미콘 사장도 SIC센터장 출신이다.
LX세미콘이 SIC센터 이관을 요청한 건 반도체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LX세미콘의 전신은 LG반도체 출신 10명이 지난 1999년 설립한 실리콘웍스다. LG그룹은 2014년 실리콘웍스를 계열사로 편입했다. 이를 통해 실리콘웍스는 1999년 ‘재계 빅딜’ 당시 반도체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긴 이후 끊겼던 LG 반도체의 명맥을 이었다. 이후 LX세미콘은 LCD·OLED DDI를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을 이뤄냈다. 직원 수도 2012년 300명, 2017년 800명을 거쳐 2019년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연간 매출도 2015년 5358억원에서 2020년 1조1619억원으로 사상 첫 연간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지난해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이후 LX그룹은 LX세미콘을 그룹 내 핵심 계열사로 키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LX그룹이 LX세미콘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동차 방열소재와 관련한 RF머티리얼즈의 지분을 인수하고, LG이노텍으로부터 반도체 웨이퍼와 관련 특허를 넘겨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는 과거 LG반도페 대표이사를 맡는 등 반도체사업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진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의지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SIC센터 이관을 요청한 것도 구본준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LX세미콘의 사업구조는 DDI 편중이 과도한 상황이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디스플레이 DDI가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한다. DDI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모바일AP, SoC 칩 설계역량을 보유한 LG전자 SIC센터를 넘겨받는 게 최선이라고 LX그룹 핵심경영진은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실리콘웍스 시절에도 LG전자 SIC센터를 실리콘웍스로 넘기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당시에는 실리콘웍스가 SIC센터를 양도받을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아 무산됐었다”며 “하지만 LX그룹 계열분리 후 구본준 회장이 SIC센터 이관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지난해 SIC센터 양도요청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SIC센터 이관은 LG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LG전자 측은 메타버스, 자율주행, 로봇 등 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을 하는 데 있어 반도체 설계역량을 갖춘 SIC센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LX 측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LX세미콘에 SIC센터를 양도하지 않기로 한 건 LG그룹 고위 경영진의 결정"이라며 "구광모 회장도 반도체 설계역량을 중요시하고 있는 만큼 SIC센터에 대한 관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