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소재값…현대차, 전기차 배터리 리스크에 무방비 노출
폭스바겐‧테슬라 등 수년 전부터 소재 투자
현대차는 시장 동향 파악 수준에 그쳐
2022-05-12 이수환 전문기자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전기차 배터리 원소재 가격 급등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폭스바겐, 테슬라, 메르세데스-벤츠,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해외 완성차 업체들은 광산 직접 투자는 물론 헷지(hedge)와 같은 금융 기법도 활용 중이지만, 현대차와 기아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기준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88%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니켈, 코발트, 망간, 리튬 등 배터리 소재 가격이 오를수록 전기차에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어 가격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구체적인 대응 방안과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배터리 원소재 시장 대응을 위해 전략소재팀을 신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나, 아직까지 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를 비롯해 CATL 등 국내외 배터리 셀 업체와의 원소재 가격 연동폭 정도만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 내부에도 코발트와 같은 주요 광물을 담당하는 조직 자체는 있다. 다만 엔진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제거하기 위한 촉매용 소재만 다뤘다. 팔라듐, 로듐, 플래티넘이 대표적이다. 이들 소재는 현대차가 직접 제련소에서 구매할 정도로 상당한 신경을 썼다. 이와 달리 니켈, 코발트, 리튬, 망간 등 배터리 소재의 중장기적인 구매 전략을 담당하는 조직은 최근에서야 꾸려졌다.
현대차는 1분기 실적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을 통해 원자재 가격 대응을 위한 전담 조직을 운용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선 지금부터 조직을 운용해도 3~4년 정도는 배터리 소재 가격에 따른 원가 상승 위험에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만 해도 2017년부터 배터리 소재 구매와 전략을 담당하는 조직을 운용했고, 저렴할 때 니켈 등을 구입했다고 헷지와 같은 금융 상품도 활용한다"며 "광산과 같은 불확실성이 높은 자보다는 탄소배출량 규제 강화에 맞춰 친환경 배터리 소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간 배터리 셀, 완성차 업체들은 코발트와 같은 분쟁 광물은 '책임 있는 광물 공급 연합(RMI)'을 통해 윤리적 구매를 진행했다. 하지만 니켈이나 망간은 매장량이 많아 이런 제약이 없다. 대신 전기차의 친환경 이미지 구축을 위해 소재부터 배터리 셀 완성까지 탄소 배출량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공개토록 하는 규제가 생겼다.
유럽연합(EU)은 전기차 배터리를 유럽 내에 수출할 경우 전 과정 탄소 배출량 표기를 의무화했다. 2024년 7월부터 시행된다. 2027년 7월부터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자체를 규제한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배터리는 아예 전기차에 사용될 수 없다는 의미다.
업계 전문가는 "현대차는 글로벌 상사나 공급망 업체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의 가격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많은 니켈이나 리튬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탄소 배출량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