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내년 반도체 장비투자 '대폭 축소' 통보
지난 4월 장비발주 가이드라인 수정
사전 부품 발주한 장비업계 ‘곡소리’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도 속속 감산
2022-10-05 강승태 기자
SK하이닉스가 내년에 전례 없는 설비투자 축소를 단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초 협력사와 약속했던 내년 장비 발주물량을 대폭 감축해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협력사에게 내년 설비투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전달했다. 협력사들은 이에 맞춰 관련 부품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지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최근 투자 축소를 통보하면서 내년 반도체 장비 업계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5일 반도체 장비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국내 주요 장비업체들에 이같은 내용의 내년 설비투자 축소계획을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장비업체 A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SK하이닉스가 미리 약속했던 장비 발주 물량 중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을 협력사들에 알려왔다”고 말했다. 일부 장비업체의 경우 연초 합의된 물량 대비 70%이상 감축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기업은 매년 8~9월께 이듬해 설비투자 계획을 결정해 협력사에게 요청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일정이 앞당겨졌다. 지난 2~3년간 코로나19,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미리 부품을 확보하지 않으면 장비 공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와 협력사들은 올해의 경우 지난 4월에 내년도(2023년) 설비투자에 대한 의견을 논의했다. 미리 가이드라인을 확정해야 안정적인 장비 납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9월 말 SK하이닉스는 4월에 약속했던 물량을 대대적으로 줄인다는 방침을 협력사들에 전달했다. SK하이닉스가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한 이유는 분명하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 과잉이 생각보다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측은 지난 2분기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 콜을 통해 “내년 캐팩스(CAPEX·설비투자비)는 상당폭 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내년 시나리오 중에는 상당폭 캐펙스를 감소하는 케이스가 포함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쟁사 또한 투자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설비투자액을 2021년 상반기보다 13.5% 줄였다. 마이크론은 최근 내년 설비투자 규모를 올해보다 30% 줄이겠다고 밝혔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기존 공장 생산량을 줄이고 장비 구매 예산을 삭감해 2023 회계연도 자본지출(설비투자)을 30% 감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키옥시아 역시 올해 10월부터 욧카이치와 기타카미 플래시메모리 공장에서 칩 생산을 위한 웨이퍼 투입량을 약 30%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설비투자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시장이 침체되면 주요 업체들은 투자 규모를 줄이며 대응해 왔다. 다만 이번 경우처럼 이미 정해놓은 투자 가이드라인을 갑자기 대폭 축소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 얘기다.
SK하이닉스의 투자 축소로 국내 장비업체들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가이드라인에 맞춰 부품 확보 등을 위해 많은 비용을 이미 투입했기 때문이다.
B사 고위 관계자는 “이미 관련 부품을 모두 구입하는 등 계획됐던 장비 공급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발주량이 이렇게 줄면 당장 현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C사 고위 관계자는 “상반기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면 투자규모가 줄어도 기존 보유한 현금으로 버틸 수 있었다”며 “바뀐 방침대로 투자가 집행되면 내년 생존 자체가 불투명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일부 협력사에 대해 금융지원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내년 설비투자 계획은 현재 수립하고 있는 단계로 지금 당장 공식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