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인사이드]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산업정책 용어정리

‘핵심전략기술’ ‘국가전략기술’ ‘국가첨단전략기술’ ‘국가핵심기술’

2022-11-18     이종준 레드일렉 심사역
'네이밍'(Naming)은 상품을 파는 기업에만 중요한 건 아니다. 나랏일에 있어서도 네이밍은 중요하다. 최고의 정책도 네이밍을 잘못하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네이밍, 그리고 그 정책에 쓰이는 용어들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수요자들이 헷갈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최근 1~2달 사이 발표된 정부의 산업·과학기술 관련 정책은 '정책 수요자'라 할 수 있는 기업들을 한없이 헷갈리게 만든다.   ‘핵심전략기술’, ‘국가전략기술’, ‘국가첨단전략기술’, ‘국가핵심기술’...  자...얼마나 비슷한가. 용어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정책인지 단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도 비슷한 이들 용어를 구분할 포인트는 새 정부의 방향성이다. 전임 정부와 비교를 통해 파악해보자.

□ 우선, 핵심전략기술이다.

핵심전략기술이란 “소재·부품·장비 중 산업 가치사슬에서 원활한 생산과 투자 활동을 위하여 핵심적 기능을 하는 기술”이라고 법에 명시돼 있다.(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지난 10월 발표된 ‘새정부 소재부품장비산업 정책방향’에서, 핵심전략기술의 수를 기존 100개에서 150개로 늘렸다. 새정부는 이를 두고 “핵심전략기술 확대개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확대개편이 아니라 핵심전략기술 산업분야에 바이오가 추가된 게 포인트다. 기존 산업분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기계금속, 전기전자, 기초화학 등 6곳이었다. 바이오가 새로 들어와 7곳이 됐다. 말은 말일 뿐이다. 맥락을 보자면, 핵심전략기술은 으뜸기업(법상 용어는 특화선도기업) 선정에 쓰이는게 주 목적이다. 핵심전략기술과 관련이 있어야 으뜸기업에 선정될 수 있다. 으뜸기업에는 5년간 최대 25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자금을 비롯해 각종 규제 완화와 세금 혜택 등이 지원된다. 2021년과 2022년에 선정된 으뜸기업을 보면 핵심전략기술과의 관련성이 확 이해된다.

<2021년 선정 으뜸기업 1기 22개사>

반도체(3) - 주성엔지니어링(반도체 증착 부품·장비 제조기술) 경인양행(반도체 패턴용 공정소재 제조기술) 동진쎄미켐(반도체 패턴용 공정 소재 제조기술)

디스플레이(4) - 코오롱인더스트리(디스플레이용 필름 소재 제조기술) 신화인터텍(디스플레이 발광 소재 제조기술) 선익시스템(고해상도 OLED 제조를 위한 핵심부품 제조기술) 에이치앤이루자(디스플레이 증착 장비 제조기술)

전기전자(4) - 에이테크솔루션(광학 소재·부품 제조 기술) 일진머티리얼즈(초극박 소재 제조 기술) 아모텍(전류제어 부품 제조 기술) 에코프로비엠(이차전지 전극 소재부품 제조 기술)

기계금속(7) - 와이지-원(고경도 가공용 부품 제조기술) 이오테크닉스(광학 가공장비 제조기술) 하이젠모터(정밀모터 부품 제조기술) 새솔다이아몬드공업(연마 소재부품 제작기술) 에스비비테크(고정밀 구동부품 제조기술) 아스플로(산업용 특수 강관 소재 제조기술) 미래컴퍼니(연삭장비 제조기술)

자동차(3) - 상아프론테크(자동차 연료전지 스택용 핵심 소재·부품 제조기술) 성우하이텍(카본 복합 소재 제조기술) 오토젠(장수명 도금 강판 제조기술)

기초화학(1) - 후성(불소계소재 제조기술)

<2022년 선정 으뜸기업 2기 21개사>

반도체(6) - 나노텍(반도체 증착 부품·장비 제조 기술) 라온테크(반도체 이송 장치 제조 기술) 피에스케이(반도체 공정 불순물 제거 장비 제조 기술) 네패스(반도체 보호 소재 제조 기술) 이엔에프테크놀로지(반도체용 불소화합물 제조기술) 에스케이실트론(반도체 기초소재 제조 기술)

디스플레이(2) – 엔씨켐(디스플레이용 코팅 소재 제조 기술) 엘티메탈(디스플레이용 TFT 소재 제조 기술)

전기전자(5) - 트리노테크놀로지(전력제어 부품 제조 기술) 천보(이차전지 전해액 제조 기술) 아이블포토닉스(압전 소재부품 제조 기술) 이너트론(고주파 필터 소재 제조 기술 율촌화학(이차전지 패키징 소재부품 제조 기술)

기계금속(4) - 현대중공업터보기계(극저온 액체 이송용 부품 제조 기술) 동화엔텍(열교환부품 제조 및 성능 개선 기술) 디와이파워(실린더 부품 제작 기술) 화신(용접 공정 자동화 제조 기술)

자동차(2) - 디젠(운전자정보시스템 최적화 기술) 일진하이솔루스(자동차 연료전지 스택용 핵심 소재·부품 제조 기술)

기초화학(2) – 영우(점·접착 소재 제조 기술) 티에스알(탄성소재 및 부품 제조 기술)

보다시피, 핵심전략기술은 추상의 항목이고, 으뜸기업이 실재하는 지원대상이다. 그런데 으뜸기업 선정수를 늘리겠다는 내용은 ‘새정부 소재부품장비산업 정책방향’에 없었다.
2024년까지 으뜸기업 100개사 선정은 전임 정부가 발표했던 계획이고, 새정부는 2023년 3기 으뜸기업에 20개사 내외를 선정하겠다고 지난달말 공고한 바 있다. 1기 22개사, 2기 21개사에 이어 내년 3기에 20개사 내외가 선정되는 추세라면, 2024년에 100개사 수준의 으뜸기업이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진 전임정부의 계획이다. 내년부터 바이오산업 분야 기업까지 으뜸기업에 선정하겠다는게 새정부의 정책방향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의 지원을 받던 산업군 입장에서는, 결국 으뜸기업 TO가 줄어들게 된다. 5년간 최대 250억원의 R&D 자금, 각종 규제완화와 세금 혜택의 기회인데 말이다. 으뜸기업에 선정된 기업과 연계된 핵심전략기술을 살펴보면, 몇몇은 의아한 매칭도 눈에 띈다. 거기에 대기업 집단 소속도 있는걸 보면, 으뜸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꽤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 다음은 국가전략기술이다.

새정부는 전임 정부의 정책에서 명칭을 조금 바꾸고 가짓수를 추가했다. 발표 주체를 국무총리 주재 회의에서 대통령 주재 회의로 격상시켰다. 전임정부의 용어 ‘국가 필수전략기술’에서 ‘필수’를 뺀 ‘국가전략기술’로 이름을 바꿨다. 국가 필수전략기술은 10개였고, 국가전략기술의 가짓수는 2개를 추가한 12개다. 전임 정부가 관련 정책을 발표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작년 12월 국무총리 주재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전략’이 발표됐다. 새정부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의 발표는 지난 10월 대통령 주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였다. 국가전략기술의 법적 정의는 없다.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이다. 현재는 근거법이 없다. 혹시나 오인을 우려해 밝히자면,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법적 규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연구·인력개발비 중 국가안보 차원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정되고 국민경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라고 조세특례제한법에서 국가전략기술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지칭하는 국가전략기술은 새정부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의 국가전략기술과 말만 같지 다른 개념이다. 조세특례제한법의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 2차전지, 백신 등 산업 분야 3곳의 기술만을 가리킨다. 법적 정의는 없지만, 무엇이 국가전략기술인지는 알 수 있다.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전임 정부)>

△인공지능 △5세대(5G)·6세대(6G) △첨단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

<12대 국가전략기술(새정부)>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이동수단 차세대원자력 △첨단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

전임정부의 정책과 비교해, 새정부의 국가전략기술에는 첨단이동수단과 차세대원자력이 추가됐다. 국가전략기술 지정 배경과 관련, 전임정부와 새정부의 세계 정세에 대한 판단은 비슷하다. “기술이 단순 시장경쟁을 넘어 공급망·통상, 외교·안보적 역학관계에서 핵심적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어, 국익관점에서 이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기술전략이 필요한 시점”(전임정부) “자국 중심 기술보호와 국익증진 목적의 기술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국제 구도 속, 경제를 넘어 외교·안보 측면까지 고려한 전략기술에 선택과 집중해 기술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기술 국가전략이 시급”(새정부) 국가전략기술은 정부 임기내 큰 틀의 과학기술 정책방향으로, 연구과제 선정 등에 반영될 것이다. 말만 놓고보면, 국가첨단전략기술은 국가전략기술의 하위개념으로 보이지만, 법적 발생 순서로는 국가첨단전략기술이 먼저다. 둘은 상관있어 보이지만, 체계적 구상이 아닌, 각자 만들어졌다. 정부 주무부처도 다르다(국가전략기술-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첨단전략기술-산업통상자원부).

□ 이번엔 국가첨단전략기술이다.

국가첨단전략기술은 근거법이 이미 마련돼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서 “공급망 안정화 등 국가·경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 및 수출·고용 등 국민경제적 효과가 크고 연관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현저한 기술”로 정의했다. 전임정부 시기인 올해 1월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고, 새정부가 들어선 8월 법이 시행됐다. 시행 3달뒤인 11월 첫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3개 산업분야의 국가첨단전략기술 15개가 선정됐다. 선정된 기술의 가짓수가 별로 중요하진 않다. 아주 광범위하게 틀만 잡아놓았고 나중에 세부수준을 고시할 계획이다.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단 3개 산업만이 국가첨단전략산업에 지정됐다는게 중요하다. 국가첨단전략산업도 법에 정의된 용어다. 이번 국가첨단전략산업 지정에 자동차, 수소, 우주항공, 식품, 섬유, 태양광 등이 지원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국가첨단전략기술은 이름이 비슷한 국가전략기술과는 크게 상관없지만, 국가핵심기술하고는 아주 밀접하다. 국가핵심기술이 국가첨단전략기술을 기능적으로 포괄하는 관계다. 즉, 국가첨단전략기술은 자동적으로 국가핵심기술로서의 제한을 받는다. 자 그러면, 국가핵심기술부터 살펴보고 국가첨단전략기술로 다시 돌아오겠다. 열거된 개념 4개 가운데, 국가첨단전략기술이 제일 중요해 보인다. 새정부에서 처음 추진된 정책이면서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 국가핵심기술도 있다. 이건 오래된 개념이다.

근거법인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2007년 처음 시행됐다.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에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로 정의됐다. 올해 9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제40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국내 2차전지 소재 기업 엘앤에프가 신청한 전기전자(2차전지) 분야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의 수출을 불승인했다. 국가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기술이었다. 또한 2017년 ‘제17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TV용 OLED 패널 제조 기술 수출을 조건부 승인한 바 있다. 역시, 국가의 연구개발비가 들어간 기술이었다. LG디스플레이의 조건부 기술 수출 승인 건은, 결정이 도출되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그런지 조건부를 달긴 했지만, 비교적 쉬운 조건(소재·장비의 국산화율 제고, 차기 투자의 국내 실시, 보안 점검 및 조직 강화)이라 어쨌든 승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와 별개로, 우리나라 기술개발 환경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국가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되지 않은 유력 기술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국가의 연구개발비가 들어가지 않은 기술이라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기술수출이나 해외M&A시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 신고를 수리(授理)받아야한다.

<국가핵심기술 2021년 7월 산업부 고시 기준>

총 12개 산업분야 / 73개 국가핵심기술 반도체 11개 / 디스플레이 2개 / 전기전자 4개 / 자동차·철도 9개 / 철강 9개 / 조선 8개 / 원자력 5개 / 정보통신 7개 / 우주 4개 / 생명공학 4개 / 기계 7개 / 로봇 3개 (※ 수소 분야 2개 기술에 대한 신규 지정 내용이 담긴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에 관한 고시’ 일부개정안이 올해 7월 공고, 현재 의견 수렴 단계)
국가핵심기술에 지정(예정)된 산업(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자동차, 수소, 우주항공)이 국가첨단전략산업에 지원한 건 자연스럽다. 이왕 기술수출과 해외M&A에서 제한을 받는데,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서 국가적 육성전략의 도움을 받아보자는 심산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한번 더 강조하자면,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단 3개의 산업만이 국가첨단전략산업에 선정됐다. 국가의 육성정책이야 어쩌면 거기서 거기다. 인력양성과 특화단지지정(세금혜택, 규제완화)에서 크게 안 벗어난다. 다만,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국가첨단전략산업은 이름에서부터 국가적 대규모 지원의 냄새가 나지 않는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에서 범정부 차원의 정책을 결정한다. 산업·기재·교육·과기·외교·환경·국토·중기부 장관을 비롯해 국정원장, 금융위원장, 국무조정실장이 정부측 위원을 맡는다. 지원규모가 커지면, 제한도 커지기 마련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인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산업분야는 국가핵심기술 지정 때보다 기술수출과 해외M&A 등에서 더 강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첨단전략산업에 해당하는 최종 제품을 만들어내는 대기업들은 국가와 이해관계가 거의 일치한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애초에 국가핵심기술로 제한을 받아왔기에,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서의 국가적 지원책이 달가울 것이다.

□ 문제는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중견기업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지원이 자칫 최종제품 제조 대기업에 집중되고, 소재·부품·장비 중소·중견기업은 해외 고객사에 적기에 물건을 팔지 못하거나, 높은 인수가액을 부르는 해외 M&A에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입장은 경험적으로 팽팽하게 사례로 입증되기에 누구 편을 들기는 쉽지 않다. 대기업은 대기업 나름대로 성능이 안나와도 국산품을 써주며, 국내 중소기업과 함께 기술개발을 완성했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더라는 경험.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기껏 힘들게 스펙 맞춰서 개발해 놓았더니, 이런저런 꼬투리로 다른 곳에는 팔지 못하게 막아놓고 단가만 후려치더라는 경험. 이런 입장을 잘 반영해 조화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게 국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막상 핵심전략기술에 바이오 산업을 끼워 넣은 건 못내 아쉽다. 첨단전략산업에 속한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으뜸기업 선정이 줄어들 수도 있는 까닭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전자부품 분야 전문미디어 디일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