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통신 업계 “빅테크 NW 투자 분담 ‘한목소리’”…왜?
리사 퍼 ETNO 사무총장, “인터넷 불균형, 대규모 트래픽 유발 빅테크 탓”
미국·유럽, 빅테크 비용 분담 법제화 추진
2024-09-15 윤상호 기자
세계 통신 업계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 이상 네트워크(NW) 투자를 혼자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NW를 통해 수혜를 입은 국가와 기업이 같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소송까지 하고 있다. NW 투자 지연은 관련 산업과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5세대(5G) 이동통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지난 8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유럽통신사업자협회(ETNO)와 공동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리사 퍼 ETNO 사무총장은 “인터넷 생태계는 불균형이 존재하는데 이는 통신망에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빅테크가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유럽은 인프라 투자를 위해 대규모 트래픽 발생 사업자가 통신사에게 직접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퍼 사무총장은 유엔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 리더십 패널 위원이다. 유럽 사이버 보안기구(ECSO) 이사회 멤버기도 하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지난 7일과 8일 열린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양(APAC) 콘퍼런스’에서 같은 주장을 했다.
마츠 그란리드 GSMA 사무총장은 “초고속 연결은 디지털 국가의 초석”이라며 “통신사 투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 모델과 주파수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로스린 레이톤 덴마크 올브르대 교수는 “한국이 콘텐츠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콘텐츠 공급자(CP)는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라며 “글로벌 CP가 더 많은 광고·가입자·수익을 누린 것은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자리에 모인 APAC 통신사는 통신사 수익성 감소로 NW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책적 기금 조성 ▲빅테크 망 이용료 부과 법제화 ▲정부의 빅테크와 통신사 협상 중재 등을 요구했다.
통신사가 NW 투자 불만을 토로한 이유는 투자 대비 수익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통신사는 4세대(4G) 이동통신 시대 들어 판을 빨리 넓게 펴는 것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세대 전환을 통한 가입자 이전과 통신비 인상이라는 사업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통신비 구조는 종량제에서 정액제로 변했다. NW 위에서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꽃을 폈다. NW 생태계에서 통신사는 주도자에서 NW 공급자라는 생태계 구성원 중 하나로 떨어졌다.
김영섭 KT 대표는 “통신사가 NW를 구축하고 독점적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얻는데 만족하는 동안 빅테크 기업은 통신사가 구축한 인프라에 ▲메신저 ▲콘텐츠스트리밍서비스 ▲자율주행 ▲인터넷 금융 등 혁신 서비스를 내놓아 디지털 생태계 주인이 됐다”라며 “▲클라우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는 영역에서 대등한 정보기술(IT) 역량을 축적하고 아직 초기 단계인 ▲스마트시티 ▲메타버스 ▲디지털 헬스케어 ▲에너지 등 영역에서 주도권 확보가 필요하다”라고 평가했다.
빅테크는 반발했다. 가입자가 통신사에 요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빅테크까지 비용을 내는 것은 ‘이중과금’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구글은 유럽 통신사 오랑주 등에게는 비용을 내고 있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 소송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소송은 SK브로드밴드가 지난 2019년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에게 망 이용대가 협상에 나서도록 해 달라는 신청을 해 촉발됐다. 넷플릭스는 협상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2020년 이를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2021년 1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협상 의무가 있다’고 결론냈다. 현재 2심 진행 중이다.
한편 각국 정부는 고심 중이다. ‘빅테크 우선’에서 ‘통신사 고려’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ICT 산업 진흥을 위해 통신사를 옥죄었지만 통신사가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EC)는 기가비트 인프라 법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의회는 인터넷 공정 기여법을 발의했다.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도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8건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5G 투자는 인구 밀집 지역은 각각 농어촌 등은 공동으로 NW를 구축토록 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5G 28GHz 투자를 포기했다. 정부는 28GHz 신규 사업자를 모집하고 있다.
디일렉=윤상호 기자 crow@bestwaters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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