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법 폐지 ‘급물살’…업계, 이해득실은?

통신사, 죄수의 딜레마…마케팅 경쟁 눈치작전 불가피 제조사, 휴대폰 시장 반등 기대…통신사 의존도 상승 단점 유통사, 거래 확대 수익 증대 청신호 알뜰폰·제4이통사, 생존 기반 위태

2024-01-23     윤상호 기자
정부와 여당이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을 폐지키로 했다. 통신사와 유통사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경쟁이 활성화하면 소비자의 휴대폰 구매 부담이 줄어든다고 판단했다. 업계는 입장을 표하지 않았다. 오는 4월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가 있기 때문이다. 정책에 왈가왈부하기는 부담스럽다. 이해관계는 엇갈린다. 22일 정부는 단말기유통법 폐지를 추진키로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환영의 뜻을 내놨다. 단말기유통법은 지난 2014년 시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다. 현 여당이 집권할 때다. 이 법은 차별적 보조금(지원금)을 통한 다수의 고객 차별 행위를 막기 위해 제정했다. ▲통신사 중심 휴대폰 유통 구조 개선 ▲마케팅 경쟁 대신 서비스 경쟁 촉진 ▲정보 비대칭성을 통한 시장 교란 방지 등을 막기 위해서다. 지원금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요금할인(선택약정할인)을 제공토록 했다. 법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공시지원금 및 추가지원금 등 정보 투명성은 높아졌다. 선택약정할인 이용자가 증가했다. 자급제가 활성화했다. 알뜰폰(MVNO, 이동전화재판매) 업계가 성장했다. 반면 통신사 경쟁은 축소했다. 국내 출시 휴대폰 제품군이 감소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 실장은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단말기유통법을 폐지해 지원금 공시제도와 추가 지원금 상한을 없애서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국민의 휴대폰 구매비용을 줄이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선택약정할인제는 단말기유통법 폐지 이후에도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소비자 혜택을 유지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세부적인 사항은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업계는 묵묵부답이다. 정부와 여당은 휴대폰 출고가 및 통신비 인하를 줄곧 요구했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타깃이 되면 더한 부담을 져야할 수도 있다. 다만 표정은 엇갈린다. 웃는 쪽도 우는 쪽도 있다. 통신사는 마케팅 비용이 상승할 위험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다. 지금처럼 서로 돈을 안 쓰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다. 5세대(5G) 이동통신 가입자 유치전이 벌어질 경우 2014년 이전처럼 매출액의 20% 이상을 마케팅비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당시는 경쟁사만큼 돈을 쓰지 않으면 점유율 지탱이 쉽지 않았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경쟁이 2014년 이전으로 돌아갈 경우 알뜰폰과 제4이동통신사는 재앙이다. 이들이 통신사처럼 휴대폰을 매개로 가입자를 끌어들이는 전쟁에 뛰어들기는 재정 부담이 크다. 요금으로 맞서려면 매출과 이익 모두 하락이 불가피하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나쁘지 않다. 지원금이 풀리면 고가 스마트폰 판매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연간 200만대 규모가 깨진 상태다. 이를 다시 높일 수 있는 계기다. 자금 동원 능력에 따라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해외 스마트폰 업체 진입도 확대할 수 있다. 매출인지 손익인지 전략적 판단이다. 자급제는 위축이 불가피하다. 지원금 상승은 통신사 중심 유통 구조 강화를 수반한다. 제조사가 자급제에 무게를 실을 경우 통신사 유통망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유통사는 이득이다. 유통사는 통상 휴대폰 판매 대수 또는 가입자 유치를 통해 이익을 얻는다. 거래 건수가 늘어야 수익도 는다. 2014년 이전 가입자 차별 행위 등은 대부분 유통사 전략 탓에 발생했다. 물론 통신사의 묵인도 있었다. 이들은 통신사로부터 받은 재원 중 일부를 불법 지원금으로 사용했다. 지난 10년 동안 단말기유통법 폐지를 줄곧 주장한 것도 이들이다. 소비자는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2014년 이전 시장은 일부 소비자는 고액 지원금을 받아 휴대폰을 싸게 샀지만 통신사와 유통사는 이 비용을 다수 소비자에게 전가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혜택을 보는 사람만 볼 수 있다. 이때 통신 시장에서 ‘호갱(호구+고객)’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고가 요금제 강요 등 다양한 호갱을 양산했다. 법까지 만들어 시장을 통제한 이유다. 단말기유통법이 없어지면 이 상황을 재현할 확률이 높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부정적이다. 휴대폰 구매 장벽 완화는 소비 증대로 이어진다. 그만큼 자원 소비도 많아진다. 중고폰 시장도 타격이다. 새 폰 가격이 떨어지면 굳이 중고폰을 살 필요가 없다. 한편 실제 단말기유통법 폐지가 어떻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법안 폐지는 국회와 협력이 필수다. 방 실장은 “구체적인 방안은 달라질 수 있다”라며 “정부의 의지와 방향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디일렉=윤상호 기자 crow@bestwaters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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