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대륙의 실수인가

성장 산업에 필요한 건 '내다팔 시장'

2024-02-29     이수환 전문기자
중국산 제품이 높은 가성비를 가진 경우를 흔히 '대륙의 실수'라 부른다. 기대 이상의 품질을 낸 경우다. 그러면 요즘 화제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대륙의 실수라고 말해야 할까. 지난 2020년 테슬라가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인 CATL과 협력한다는 소식을 업계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테슬라는 일본 파나소닉, 국내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과 같이 내로라 하는 배터리 기업의 프리미엄 제품을 주로 받아다 썼다. 저가, 중국산 이미지를 가진 CATL, 그것도 삼원계보다 저렴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쓰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테슬라를 넘어서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 볼보, 현대차, 기아 등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애용하고 있다. 당시 우리 기업들의 리튬인산철 배터리 평가는 매우 박했다. '수준 떨어지는 제품'일 뿐이었다.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2021년 1월로 가보자. 당시 삼성SDI는 전기차 시장에서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질문에 "주행거리가 짧은 보급형이나 버스와 같은 상용차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점유율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답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가격경쟁력 덕분에 저가·초저가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은 있지만, 성능과 무게 측면의 약점 때문에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차 시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개발해 양산할 계획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시절이다.
CATL
현재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리튬인산철 배터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평가절하했던 제품을 다뤄야 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는 내부 이야기도 들린다. 그만큼 삼원계 배터리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프리미엄 제품을 충분히 팔고, 원가를 낮춰 중저가로 하방 전개한다는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너무 빨리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치고 올라왔다는 점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말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배터리와 같이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 우리 기업이 대거 상위권을 차지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선진국이나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입장에서 따라간 적은 많았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잔뜩 주목을 받고 기대감이 컸던 탓인지 중저가 제품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자만이거나 방심이었던 거다.
노벨
성장 산업에 필요한 건 점유율이다. 시장이 확대되는 만큼 여러 기업이 뛰어들기 마련이고, 결국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20~30% 수준의 안정적인 상위권을 유지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내다팔 수 있는 시장이 있고, 제품이 있으면 과감하게 시도를 했어야 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앞에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대륙의 실수라는 언급을 했다. 그런데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중국이 개발한 게 아니다. 201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미국 텍사스오스틴대의 존 굿이너프 교수가 원천기술을 만들었다. 중국은 이 기술을 산업에 잘 녹여낸 셈이다. 우리가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싸구려, 저가 제품으로 바라본 건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건 대륙의 실수가 아니다. 대륙의 실력이다.

디일렉=이수환 전문기자 shulee@bestwaters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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