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이통 불발] ① '묻지마 경매가' 과욕이 부른 참사
2024-06-18 이진 기자
[편집자주] 과기정통부는 1년가량 28㎓ 주파수 할당을 통한 신규 이동통신 사업자 출범 절차를 진행했다. 다양한 연구반 가동과 공적 업무 인력을 투입하는 등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6월 14일 기존 선정된 주파수 할당 대상 법인에 대한 계획을 취소하기로 했다. 청문 절차를 거쳐 7월 중으로 최종 결론이 나겠지만, 제4이동통신의 출범은 사실상 무산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불거진 적정 주파수 여부, 경매제도의 명과 암, 사후 처리 절차 등 풀어가야 할 숙제가 쌓였다. 디일렉은 제4이통 주파수 할당 취소와 관련한 쟁점을 분석하고 향후 과정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28㎓ 주파수 경매가 파국을 맞았다.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주파수 할당 대상 법인으로 스테이지엑스를 선정했지만, 준비 미흡에 따른 신뢰성 부족으로 선정을 취소했다. 정부와 통신업계 안팎에서는 스테이지엑스의 지나친 과욕과 안일한 태도가 주파수 경매의 본질을 흐렸고, 그로 인해 할당 대상 법인 취소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28㎓ 주파수 대역 경매의 이유
과기정통부가 5G용으로 할당할 예정인 28㎓ 주파수 대역은 2018년 이통3사가 총 6223억원을 들여 할당받은 후 2022~2023년에 걸쳐 반납한 주파수 대역이다. 할당 당시 각 회사별로 2000억원대의 대가를 지불했지만, 5G 망 구축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정부는 할당 조건을 지키지 않은 이통3사로부터 주파수를 회수했다.
상용화 어려운 28㎓…이통3사도 포기
28㎓ 주파수는 이동통신용으로 매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동통신3는 주파수 할당을 위해 지불한 2000억원 이상의 손실도 마다하지 않고 반납한 대역이다. 과기정통부가 신규 이동통신사업자에게 경쟁력 있는 중저대역을 5G용으로 추가 할당했다면 모를까, 신규 사업자가 28㎓ 대역 만으로 통신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지적이 잇달아 나왔다.
저주파 대역은 직진 중 잘 휘어지는 특성이 있고, 고주파대역은 직진성이 강하다. 한국에서 이동통신 서비스가 처음 시작할 당시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빨라질 수 있다. SK텔레콤은 2G 서비스를 제공할 당시 700㎒를 썼고,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 1.8㎓를 사용했다. 전국에 설치한 기지국 수가 같다고 할 경우, 통화품질은 전파가 잘 휘어지는 주파수를 가진 SK텔레콤이 가장 앞섰다.
통신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1.8㎓ 주파수로 700㎒와 비슷한 품질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연구를 많이 했었다"며 "1.8㎒ 주파수를 쓰는 이통사가 700㎒와 같은 수준의 품질을 제공하려면 기지국을 1.7배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5G 주파수도 마찬가지다. 28㎓ 주파수를 사용하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기존 3.5㎓ 주파수로 서비스하는 사업자와 경쟁하려면 더 많은 기지국을 촘촘히 설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파가 휘어지는 회절성 자체가 좋지 않기 때문에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에서 5G를 서비스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28㎓을 쓰는 사업자는 사방이 확 트인 대형 경기장이나 콘서트장 등 핫스팟을 중심으로 5G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전파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이통업계 한 고위 임원은 "5G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시작한 국가는 한국이지만, 엄밀히 말해 28㎓ 대역 기반으로 사업에 나선 국가는 미국이다"며 "미국에서 28㎓ 대역의 문제로 지적되는 회절성 문제 등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고대역 주파수의 난점을 해소해야 한다는 장벽을 허물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한국 이통사가 3.5㎓ 주파수 대역을 전국망으로 사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28㎓ 대역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며 "정부에 28㎓ 대역 주파수 할당을 요청할 당시 반드시 지켜야하는 의무 사이트 수가 있는데, 이 역시 대규모 자본(CAPEX)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통3사가 2000억원에 달하는 주파수 할당 대기를 포기하는 쪽이 더 이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경매는 흥행했지만 결과는 '승자의 저주'
1월 있었던 28㎓ 주파수 경매는 의외의 흐름으로 전개됐다. 통신업계 안팎에서는 많아봐야 1500억원 앞뒤의 가격에 경매 낙찰가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50라운드 오름입찰 경매 가격은 2000억원이 훌쩍 넘어갔다. 디일렉 취재를 종합하면, 스테이지엑스와 마이모바일 2개 기업이 참여한 50라운드 경매 결과, 2100억원에 가까운 금액에 라운드가 끝났다.
후속 경매는 밀봉입찰 방식으로 진행이 됐다. 양사 중 더 많은 금액을 써낸 쪽이 주파수 할당 대상 법인으로 선정이 되는 방식이다. 짧은 시간 상대의 작전을 간파해야 하고, 무엇보다 어떤 금액을 쓰든 주주를 설득해야 한다. 수익이 날지 안날지 모를 주파수를 무턱대고 비싼 가격에 가져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제4이통의 주파수 할당 대가가 1500억원을 넘어갈 경우 사업성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주파수 경매의 승자가 사실상 '패자'가 되는 승자의 저주 혹은 승자의 재앙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경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금액에 끝났다. 마이모바일은 2000억원 후반대에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고, 주파수를 가져간 스테이지엑스는 4301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를 냈다. 두 회사간 갭만 따져도 1500억원 이상이었다.
당시 이통사 관계자는 "28㎓ 주파수의 가치가 이정도일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며 "내부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최소 10년 이상 사업을 해도 손익분기를 넘길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금액에 경매가 끝났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업자 선택에 따라 써낸 금액에 경매가 끝났지만, 4301억원이라는 큰 금액에 경매가 끝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고 밝혔다.
스테이지엑스의 과욕이 부른 대참사…주파수 할당 취소
주파수 할당 대상 법인이 된 스테이지엑스는 경매 후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