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사이트] 20년 근무 삼성 반도체맨이 말하는 삼성 반도체 위기

자율성, 도전정신 사라진 경직된 조직 문화가 현 위기 자초

2024-10-14     정일규 프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위기가 자율성과 도전정신이 사라진 비효율적인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삼성 반도체 사업은 파운드리와 시스템 LSI뿐만 아니라 텃밭인 메모리 부문까지 경쟁사에 추월당할 위기에 처했다. 시장에선 '반도체의 겨울'이 아니라 '삼성 반도체의 겨울'이라는 혹평까지 나올 정도다.

삼성 반도체 부문에서 20여 년을 근무했던 삼성 반도체맨 A씨는 “삼성 파운드리가 과거 14나노 공정까지는 TSMC와 비슷한 경쟁력을 보였지만, 7나노, 5나노로 넘어가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Gen.1이 삼성 공정을 썼지만, TSMC로 바뀐 Gen.1 플러스는 전력 소모가 30% 줄고 성능이 30% 향상되었다"고 설명했다.

주요 원인은 조직 문화의 변화다. A씨는 “과거에는 개발 자율성이 보장되었지만, 최근에는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 분위기로 변했다. 설계팀의 자율성이 줄어들면서, 결정이 사장 레벨까지 올라가야 실행될 수 있다. 이는 개발 속도를 늦추고, 현장 엔지니어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진단했다.

삼성의 연봉 경쟁력도 하락했다. A씨는 “성과급(PS)을 포함해도 예전처럼 압도적이지 않아, 직원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며, “해외는 물론 경쟁사로의 이직을 고려하는 직원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A씨는 삼성이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저력을 가졌다고 진단했다. A씨는 “직원들이 다시 성장의 기회를 느끼고 조직에 헌신할 수 있도록 개발의 자유도가 커진다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삼성에는 뛰어난 리더들이 많아서 비전 설정, 자율성 확대, 권한 이양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문제를 잘 해결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삼성 반도체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분을 모시고 삼성 반도체의 위기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주관이 많이 섞여 있겠지만, 공감하는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삼성에 오래 계셨죠?

“네, 오래 있었습니다. 20여 년 반도체 분야에서 일했었습니다.”

- 최근에 보면, 원래 아주 잘 했었던 메모리도 다소 어려움을 겪는 것 같고 시스템 LSI나 파운드리 쪽은 아주 부진한 것이 눈에 띌 정도입니다. 엑시노스 같은 경우에도 무선사업부에 공급해오다가 내년에는 안 들어간다는 얘기도 있고, 3나노 공정은 아주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설계도 문제고 공정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설계와 공정을 비율을 나누면 3대7, 4대6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어디가 많은 쪽입니까?

“파운드리가 조금 더 많죠. 파운드리 잘못 때문에 설계 잘못이 지금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퀄컴 스냅드래곤 Gen.1 플러스가 공정 비교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칩이었는데 삼성 공정 쓰다가 TSMC로 가자마자 전력 소모가 30%가 줄고 전성비가 30%가 올라갔어요. 관련 자료가 인터넷에 많이 떠돌고 있습니다.”

- 퀄컴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은 데 쓸 수밖에 없겠네요?

“네. 재밌는 것은 퀄컴이 삼성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삼성 엑시노스는 항상 이겨왔으니까, 같은 공정을 쓰면서 설계만 조금 더 잘하면 시장 점유율은 우리가 다 가져올 수 있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그때 애플이 M1 칩을 내놓으면서 엄청난 성능 차이를 보여줬고, 시장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퀄컴은 그제야 삼성이랑 싸울 때가 아니다, 무조건 최선단 공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TSMC로 옮기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삼성과 퀄컴 사이에 약 30%의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죠.”

- 그렇군요.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겠네요.

“그 갭을 공정에서 줄여주지 못하는 이상 안 돌아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 퀄컴은 퀄컴대로 TSMC에 불만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왜냐하면, 지금 고객사 순위로 봤을 때 요즘은 애플보다 NVIDIA가 더 올라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 1순위 고객 NVIDIA, 애플, 그다음에 컬퀌이었는데 지금은 미디어텍한테도 밀려서 4순위가 됐어요. 그래서 삼성이 잘 잡아주면 좋겠다는 얘기도 퀄컴 내부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게 당연하죠. 내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회사인데 4순위라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도 삼성으로 못 돌아온다는 것은 경쟁이 안된다는 뜻이죠.”

- 예전엔 삼성 파운드리에서 애플용 제품도 했었는데 지금은 다 TSMC로 갔어요. 성능 차이가 크게 벌어져서 그렇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요?

“14나노 때까지만 해도 삼성과 TSMC의 경쟁력은 사실 비슷했어요. 그런데 애플이 TSMC로 떠난 이유는 보안 문제나 여러 가지 다른 이슈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정확히 왜 떠났는지는 제가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두 회사의 공정 경쟁력은 엇비슷했고, 오히려 삼성이 TSMC보다 더 잘한다는 얘기도 종종 들리곤 했죠. 그런데 7나노, 5나노 공정으로 오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 같아요.”

- 설계 쪽은 어떻습니까? 삼성 파운드리에 우리가 알만한 고객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저도 파운드리 쪽은 잘 모르지만, 고객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또 중소 고객들은 많이 늘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 LSI는 어떻습니까? 시스템 LSI의 경우, 엑시노스를 내부 거래로 많이 팔았었는데 지금은 내부 거래 물량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 정도로 경쟁력이 뒤처지면 들어가기가 어렵죠. 지금 미디어텍도 잘하고 있는데, 성능이 비슷해야 삼성과 퀄컴 칩을 함께 사용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갤럭시 제품에 성능이 다른 두 개의 칩을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삼성이 그동안 엑시노스 성능 차이를 5% 이내로 맞춰왔어요. 하지만 성능 차이가 25%, 30%까지 벌어지면, 쓸 수가 없죠.”

- 그런데 6대 4나, 7대 3 정도로 파운드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명백한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Gen.1이 삼성 파운드리였고 Gen.1 플러스가 TSMC였죠.”

- 최근에 메모리 분야도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특히 파운드리나 LSI 분야에서 삼성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인데 조직 문화와도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네. 저는 조직 문화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을 합니다.”

- 조직 문화가 많이 안 좋아졌습니까?

“좋다, 안 좋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개발을 장려하고 약간의 모험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무언가를 개발하겠다’라고 하면, 개발이 안 될 이유를 100가지도 넘게 찾아냅니다. 그렇게 이유를 다 찾다 보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거죠. 반도체 개발은 원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불확실한 영역입니다. 사실 개발이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죠. 그런데 개발을 시작하기도 전에 감 놔라 배 놔라, 이건 어떻게 할 거냐, 저건 어떻게 해결할 거냐며 문제점들만 짚다 보면, 결국 개발할 수 있는 게 없어요.”

- 과거가 언제입니까? 예를 들어서 DS 부문장이 이윤우, 권오현, 김기남, 경계현, 그리고 현재 전영현 부회장 순인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근무하셨습니까?

“저는 이윤우 부회장 시절부터 근무했는데 가장 비교되는 분은 권오현 부회장님이랑 김기남 부회장님인 것 같습니다. 권오현 부회장님은 자율성을 강조해서 설계팀의 권한이 상당히 컸습니다. 설계팀이 하겠다고 하면 기획 쪽에서나 조금 관여하는 정도였는데 김기남 부회장님 때부터는 안 되는 이유를 더 많이 찾았던 것 같습니다.”

- 김기남 부회장님 때 조직 문화가 많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이 바뀌긴 했죠. 저는 김기남 부회장님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경영하셨고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영학에서 말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너무 심하게 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떤 예들이 있습니까?

“구체적인 예를 제가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태스크들이 있으면 설계 아젠다까지 본인이 다 챙기셨어요.”

- 태스크가 많을 텐데 어떻게 다 챙길 수 있습니까?

“저는 그분을 슈퍼맨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회사의 관점에서는 약간 부정적인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설계 영역까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설계 영역은 굉장히 방대해서, 대표님이나 사장, 부사장 레벨에서는 추상화된 보고만 받게 되죠. 그런데 그 추상화된 보고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는 모든 디테일을 알고 있는 실무자가 자신의 감각과 지식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것이 더 적합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추상적인 보고를 바탕으로 결정을 하니까 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제 설계 작업이 미뤄지게 되죠. 최고위층에서의 결정이 빠르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설계가 원활하게 진행될 텐데,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설계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 결정을 내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있군요. 보고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보고하는 데도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죠. 그래서 사장 레벨에 보고하려면 못해도 2주, 길면 한 달은 준비해야 하는데 팀 단위로 엔지니어들이 보고 준비를 하다 보면 실제 설계 업무는 못해요. 그 보고 결과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죠.”

- 그전에는 어땠습니까? 자율성을 많이 강조했다고 하셨죠?

“이전에는 자율적으로 엔지니어링 팀에서 결정해서 다 했죠.”

- 김기남 부회장께서는 워커홀릭이셨죠?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그 시기에 일반 직원들도 일을 아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잘 조합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죠. 많은 분이 권오현 부회장님을 성군 같은 이미지로 생각하지만, 제가 입사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는 조금 달랐어요. 당시 ‘어느 부서에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로 직원들을 쪼고 힘들게 하는 임원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권오현 부회장님이었어요. 예전 상무 시절에 말이죠.

하지만 그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방식으로는 큰 조직을 운영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큰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터득하신 거죠. 그 이후로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셨다고 생각해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는 경영학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조직 규모가 100명, 200명을 넘어가면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해가 될 수 있어요.”

- 보고를 많이 해야 하고 보고를 위한 일을 계속 하다 보면, 거짓 보고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거짓 보고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데,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보고를 할 수밖에 없죠. 푸시가 강하게 들어오니까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의 단점은 자기 생각 이외의 것은 잘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거기에 맞추려 하다 보면 보고자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약간의 거짓 아니면 데이터 조작 같은 것이 들어갈 여지가 있죠.”

- 그러면 결정권자들은 그렇게 왜곡된 보고를 받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겠죠?

“저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결정권자는 모든 세부적인 엔지니어링 디테일을 알지 못한 채, 큰 방향이 맞다고 생각되면 결정을 내리게 되죠. 하지만 그 결정이 엔지니어링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6개월 안에 개발할 수 있다’고 보고받고, 그 말을 믿고 결정을 했는데, 실제로는 1년에서 1년 반이 걸리고, 인력도 두 배나 더 필요했다면 문제가 되겠죠.

결정권자가 그 보고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보고가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은 아닐지라도, 실제로 그 담당자가 몰랐던 걸까요?”

- 과거에는 안 그랬다는 거죠?

“네. 저는 과거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대략 2010년 전후의 임원과 현재 임원들의 위상이나 권한은 어떻습니까?

“임원의 권한이 많이 줄었죠. 예전에는 부장이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부장이 설계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리고, 제품에 바로 반영하곤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결정이 부사장이나 사장까지 올라가야 확정되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현장에서의 권한은 크게 줄어든 겁니다.

사실 엔지니어는 자기가 개발하는 데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는데, 지금은 내가 개발해야 할 것을 위에서 결정해버리니 이게 맞지 않는 거죠. 개발 분위기와 안 맞는 거죠.”

- 김기남 부회장님 다음에 DS 부문장으로 경계현 부문장께서 오셨잖아요. 성향이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좋은 분이고, 인사이트가 뛰어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 중 하나가, 반도체라는 용어로 묶이지만 사실 메모리, 파운드리, LSI는 각각 다른 사업이라는 점을 정확히 짚어주셨던 겁니다. 이 분야들은 본질적으로 다른데, 메모리에서 성공한 공식을 파운드리와 LSI에 적용하려다 보니 다 꼬였으니 이것을 풀어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부문장으로 취임하시고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 위톡이라는 방송을 통해 한두 달에 한 번씩 전체 직원들과 소통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런 점을 언급하셨죠.”

- 맞는 얘기 아닙니까?

“맞는 얘기죠. 그전에는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좋은 분이 오셨다고 생각했습니다.”

- 삼성이 조직 문화를 다시 과거처럼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하고 지금은 또 너무 다르잖아요.

“다른 것은 맞지만, 조직 문화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도 과거에 삼성과 비슷한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클라우드와 AI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향을 잡으면서 조직 문화를 바꿨잖아요. 직원들이 다시 성장의 기회를 느끼고 조직에 다시 헌신할 수 있도록 개발의 자유도도 늘어난다면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전을 줄 수 있느냐, 사라졌던 자유를 다시 줄 수 있느냐, 권한을 밑으로 다시 위임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은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큰 조직에는 뛰어난 리더들이 많이 있으니까 이 문제를 잘 고민하셔서 결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삼성 반도체 부문에 오래 계셨었잖아요. 현재 회사 내부나 외부에 선후배, 동기분들이 있을 텐데 만나면 삼성 걱정들 하십니까?

“네, 삼성 걱정 많이 합니다. 그런데 퇴사하신 분들 만나면 딴 거 신경 안 쓰고 개발만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 내부에 계신 분들은요?

“아무래도 개발 환경이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 아직도 그렇군요. 새로 무언가 하려고 하면 안 되는 이유를 해소해줘야 할 텐데 그걸 못 넘는군요.

“개발은 원래 안 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왜냐하면, 개발은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거나, 현재 상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인데, 안되는 이유가 있으니까 현 상황이 있겠죠. 이유가 있어서 개발이 안 되는 것인데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엔지니어들의 헌신과 노력입니다.

윗 레벨에 있는 임원들도 대부분 개발을 하다가 올라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안 되는 이유를 찾으라면 실무자보다 더 잘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분들은 위에도 보고해야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개발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고 절차를 줄이고, 개발자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자율성을 주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회사를 떠나 계시지만, 삼성 내부 사람들로부터 얘기 들으시잖아요. 최근 상황이 안 좋은 것이 맞는 거죠?

“거시적인 지표로 다 안 좋으니까 안 좋은 게 맞죠.”

- 앞으로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삼성에는 여전히 뛰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방향만 잘 잡으면 충분기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고요.”

- 최근에 현대차나 SK 쪽으로 이직하는 일반 직원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조직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똑똑한 사람들부터 탈출한다고 하잖아요.”

혹시 주변에 이직하는 분들은 많이 보시나요?

“꽤 있습니다.”

- 주로 어디로 가기를 희망하는 것 같으세요?

“요즘에는 애플 같은 미국 기업으로 제일 많이 가는 것 같고요, 현대에 가신 분도 있고 스타트업 가신 분도 있고 대만 회사로 가신 분도 있습니다. 반도체 인력에 대해서는 대우를 잘 해주니까 이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미국을 제일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기업에 가면 적어도 연봉이 2~3배는 오르니까요.”

- 대만이라면 미디어텍이나 노바텍, TSMC 같은 회사입니까?

“그런 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여간 국내보다는 연봉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 그래요? 삼성도 연봉을 많이 주지 않습니까?

“그 부분도 좀 아쉬운데요. 제가 입사했을 때는 연봉이 업계 최고 수준이었고, PS(성과급) 50%를 받으면 압도적인 연봉 1위 회사였어요. 하지만 요즘은 PS 50%를 받아도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조금 더 많은가, 적은가를 따져봐야 하는 수준이어서 과거보다 직원들이 체감하는 연봉 경쟁력은 많이 줄어든 거죠.

물론 회사 입장에서 비용을 조절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직원들이 체감하는 연봉은 압도적이지가 않죠.”

- PS를 받아야 조금 나은 수준이다. 업계 최상은 아니군요.

“삼성의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여전히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예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교할 필요도 없이 삼성은 그냥 최고였어요. 다른 회사와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삼성의 연봉 인상이 다소 둔화된 반면, 다른 기업들은 연봉을 올리면서, 지금은 삼성만큼 연봉을 주는 대기업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PS(성과급)를 받으면 완전히 압도적인 1위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래서 PS를 못 받으면 엄청난 불만이 폭발하는 거군요?

“그래서 PS를 못 받으면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어요. 삼성 인사팀에서도 PS 50%나 30%를 가정하고 연봉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너스로 이 정도를 줄 테니까, 연봉은 이렇게 책정하는 걸 받아들여라’라고 경력 입사자들에게 말하거나, 신입사원들에게도 ‘반도체니까 보너스를 많이 받으면 연봉이 이렇게 될 거다’라고 얘기해요.

하지만 그렇게 기대를 만들어 놓고 나중에 보너스를 줄인다면 당연히 직원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삼성의 연봉이 결코 적은 건 아니에요. 많은 연봉을 주지만, 기대치를 높여놓고 나중에 그 기대에 못 미치면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이는 기대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삼성 엑시노스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일단 파운드리가 잘하고 나서 다음 스텝이라고 생각합니다.”

- 삼성에 근무하고 계실 때도 LSI나 파운드리 부문을 분사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나요?

“제가 입사했을 때부터 있었어요. 매년 그런 얘기가 나왔죠.”

- 왜 그런 얘기가 나올까요?

“저는 경계현 전 대표님이 말씀하신 게 맞다고 생각해요. 본질적으로 다른 세 가지 사업을 한데 묶어놓았을 때, 시너지가 나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현재는 그 시너지가 나지 않고 있어요. 서로 다른 업종을 한 리더가 이끌다 보니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모습입니다. 사실 반도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메모리, 파운드리, LSI가 본질적으로 다른 사업이라는 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던 터라 그런 이야기가 계속 나왔던 것 같아요.”

- 예를 들어서 별도 회사로 분사를 하면 엑시노스를 TSMC에 맡길 수도 있잖아요.

“완전히 별도의 회사라고 하면 TSMC에서 맡아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알기로 모리스 창은 삼성을 안 좋아합니다.”

- 아예 서로 생각조차 안 하는 그런 그거군요. 왜냐하면, 다른 사업부, 예를 들어 네트워크 사업부 같은 경우에는 TSMC의 공정을 활용해서 RF 칩을 생산한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쪽은 공정과 연관이 없어서 괜찮지만, 공정을 사용하면 그에 따른 데이터나 기술 정보가 문서 형태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LSI나 파운드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 별도의 회사이긴 하지만 자료가 안 넘어간다고 보기가 어려운 거죠.”

- 삼성의 사업 구조상, 애플 같은 고객사와 경쟁하는 상황인데도 애플의 칩을 삼성에서 생산하는 시기가 있었지 않습니까? 회고록이나 관련 문서들을 보면, 미국 회사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상당히 경계를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삼성 내부에서는 우리는 물리적으로 칸막이를 쳐서, 정보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부서 간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도 그런가요?

“네. 기본적으로는 고객 데이터는 전달하지 않죠. 그렇다고 그런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킬 수는 없죠. 그런데 본질적으로는 경쟁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삼성 파운드리가 TSMC보다 전송비가 30% 좋으면 당연히 삼성을 쓰겠죠. 보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퀄리티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의 얘기는 인터뷰하신 분의 개인적인 의견이었지만, 삼성 내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신 분의 의견이었다는 점을 참고삼아 말씀드립니다.

대담 : 한주엽 전문기자
정리 : 손영준 에디터
촬영편집 : 정일규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