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삼성 미전실' 부활이 필요한 이유
'오너 리스크' 보좌할 강력한 컨트롤타워 절실
조선은 망했다. 나라 잃은 슬픔을 안겨준 비운의 왕조다. 역사의 평가가 후하지 않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500년간 지속됐다. 세계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다. 중국의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는 300년을 넘기지 못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연 하노버 왕조도 266년에 그쳤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숱한 위기와 연산군, 광해군과 같은 폭군의 등장에도 조선왕조가 5세기 넘게 유지된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당시로선 혁신적인 ‘통치 시스템’을 꼽는 이가 많다. 개국공신 정도전이 주도해 만든 ‘재상 정치’가 그것이다. 정도전은 임금의 자질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우려했다. 성군이 나올 수도 있지만, 폭군이나 우매한 군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우수한 엘리트들이 국정을 이끄는 ‘재상 정치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조선은 군주국이지만, ‘신하의 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폭군이 나타나면 신하들이 임금을 갈아치우는 반정(反正)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이 당파싸움이라는 폐해를 낳기도 했지만, 군주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500년 왕조의 기반이 됐다.
삼성전자 위기론이 들불처럼 번진다. 여기저기서 내부 폭로와 훈수가 넘쳐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라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구가 떠오를 정도다. 삼성전자가 잘 나갈 땐 아무 말 없더니, 불행해지니 백가쟁명의 이유와 비판이 넘쳐난다. 과유불급일 수 있다. 삼성의 위기와 한계를 당사자만큼 잘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데 이런 비판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위기 극복 의지까지 꺾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삼성 내부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 대비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있다. 바로 시스템의 부활이다. 조선왕조가 500년간 지속된 원동력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기업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가 핵심이다. 사람, 조직, 기술, 경영 등의 제반의 문제도 여기에서 파생된다. 삼성 안팎의 진단도 대체로 일치한다. 위기의 근원으로 국정농단 사건 이후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를 첫손으로 꼽는다. 재판에 발목이 잡히면서 굵직한 투자 결정이나 인사 혁신이 밀렸다. 이것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삼성이 미래전략실이란 조직을 폐지한 것은 뼈아픈 자충수가 됐다.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너 경영의 강력한 리더십과 이를 보좌하는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 시스템의 핵심이 바로 미래전략실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지속되고 있다. 오너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정치적 외풍이 끊이지 않는다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 정도전이 조선 개국에서 예측 불가한 군주의 자질을 리스크로 꼽았다면, 지금 삼성의 최대 위협은 변화무쌍한 정치 환경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55주년을 맞았다. 조선왕조처럼 500년 이상 지속되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할까. 굳이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된다. 특유의 강력한 오너 리더십을 보좌할 컨트롤타워의 부활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