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 셋톱 칩 계약 독점조항 삭제 제안... 텔레칩스 등 경쟁사 날개 달 듯

EU 불공정 조사 의식한 듯

2020-04-28     신해현 기자
셋톱박스 시스템온칩(SoC)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브로드컴이 세계 각국 불공정 조사를 의식해 이른바 '독점 조항'이라 불리던 계약 항목을 삭제키로 했다. 그간 이 같은 계약 항목이 직간접으로 경쟁사 시장 진입을 막아왔던 만큼 셋톱박스 시장 내 탈(脫)브로드컴 기류가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텔레칩스 등 경쟁사가 수혜를 볼 것으로 관측된다. 28일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브로드컴은 셋톱박스 제조사 등 고객사에 기존 독점권 조항 삭제를 제안했다. EU에서 진행 중인 반독점 관행 조사를 종료시키고 막대한 벌금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EU 반독점당국은 브로드컴이 6개 TV·모뎀 제조사와 맺은 계약 조항 중 경쟁사 칩 구매 금지 내용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건으로 브로드컴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브로드컴은 세계 리눅스 운용체계(OS) 기반 셋톱박스 칩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업계에선 브로드컴이 이 같은 지위를 활용해 유료방송 사업자와 셋톱박스 제조사에 부당한 압박을 가해왔다고 증언한다. 지난 2018년 브로드컴은 고객사에 이례적으로 부품 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터무니없는 유지보수 비용도 부과했다. 고객사가 타사 칩을 탑재한 안드로이드OS 셋톱박스를 도입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 한 것이다.  이미 국내에선 브로드컴의 이 같은 행보에 반발한 업체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다른 기업 제품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한창 브로드컴의 횡포 논란이 일 때 국내 IPTV용 셋톱박스 시장에선 '탈 브로드컴' 움직임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노피아테크, 가온미디어 등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는 지금도 브로드컴 외 다른 칩 업체와 제품 개발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브로드컴과 불공정 계약으로 엮여있는 업체는 일부였다"며 "이 외 기업들은 브로드컴 제품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방송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이미 지난해 미국 시냅틱스 칩 기반 셋톱박스를 도입했다.  국내 셋톱박스용 SoC 제조업체 텔레칩스는 지난해 KT가 출시한 IPTV 셋톱박스 'UHD4'에 셋톱박스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처음 공급했다. 이 칩은 텔레칩스가 설계를 맡고 삼성전자 14나노(nm) 핀펫(FinFET) 파운드리 공정에서 제조됐다. 셋톱박스용 AP '국산화'를 이룬 첫 사례였다. KT는 2017년 AI(인공지능) 기반 IPTV 셋톱박스 기가지니 모델부터 중국 하이실리콘 칩을 사용하다 지난해 텔레칩스 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KT는 예전 일부 모델에만 브로드컴 칩을 탑재했었다. 텔레칩스는 향후 칩 공급량을 늘려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텔레칩스 관계자는 "KT의 후속 셋톱박스 모델에도 칩을 공급키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