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은 어떻게 PC용 CPU 대안이 되었나
호환성보다 중시된 사용자 경험
철저히 소비자 시장 노릴 듯
2020-07-24 이수환 기자
지난 6월 23일 애플은 연례 개발자행사 WWDC2020을 통해 PC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자체 설계한 제품으로 탑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 x86 대신 ARM 아키텍처를 사용할 것임을 내비쳤다. 낯선 장면은 아니다. 애플은 2005년 IBM 파워PC 대신 인텔 x86 아키텍처 CPU로 갈아탄 바 있다. 파워PC 이전에는 모토로라 CPU를 썼다. CPU와 아키텍처를 바꾼 순서를 따지면 이번이 세 번째다.
애플만 이런 움직임을 보인 건 아니다. 삼성전자(갤럭시북S), 마이크로소프트(서피스 프로X)를 비롯해 레노버, HP 등도 ARM 아키텍처를 사용한 제품을 내놨다. 퀄컴 스냅드래곤 865나 8Cx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장착했다. MS의 경우 스냅드래곤 8Cx를 살짝 튜닝한 제품을 썼다. 과거와 비교해 비(非)x86 CPU가 PC 시장에 많이 선보였다.
과거 4억대를 바라봤던 PC 출하량은 지난해 2억6810만대를 기록했다.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났으나 큰 폭의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 PC 수요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PC 시장 절반 이상은 노트북이다. 다만 스마트폰과 달리 통신망은 여전히 무선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통신칩이 장착된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ARM 아키텍처를 사용한 PC는 예외 없이 4세대(4G) 통신 기능을 제공한다. 가입자를 늘려야 하는 통신사나 스마트폰 외에 다른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ARM 입장에서 PC는 가장 현실적인 공략 대상이다.
'x86 vs. ARM' 아키텍처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게 호환성이다. 하지만 애플이 파워PC에서 인텔 CPU로 갈아탔을 때처럼 에뮬레이터 기능을 제공하면 일단 해결은 된다. 윈도에선 64비트 소프트웨어 실행이 불가능하지만 MS가 새로운 운용체계(OS)를 준비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줄어들 수 있다. 한 번에 모두를 만족시킬수는 없어도 일정 사용자는 끌어들일 수 있다.
불편을 감수하고 여러 기업이 ARM 아키텍처를 선택한 것은 확실한 시장 확보를 위해서다. x86 아키텍처는 기업 시장의 강자다. 인텔 v프로와 같은 기업용 플랫폼에서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도 적지 않다. 애플은 X서버라 부르는 OS에 서버 제품까지 따로 내놨다가 크게 실패했다. 이후 소비자용 제품에 집중했다. 그만큼 기업용 시장은 만만치 않다. 같은 x86 아키텍처지만 인텔 대신 AMD CPU를 사용하는 것도 따져보는 곳이다.
ARM 아키텍처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저전력·고효율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라 모바일 기기에 적합하다. iOS, 안드로이드가 모바일 기기 OS 시장 장악한 상황이라 충분히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 데스크톱 PC가 아닌 노트북에 초점을 맞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ARM 아키텍처는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x86은 반대로 성능은 좋아도 배터리 사용시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애플이 ARM 아키텍처를 선택한 것은 충분히 성능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x86 아키텍처를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라 장점을 잘 살리겠다는 의도로 봐야 한다. MS가 서피스 프로X에 ARM 아키텍처를 도입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PC라는 플랫폼에서 애플, 구글에 자리를 내주지 않겠단 목적이다.
ARM 아키텍처가 PC용 CPU 대안이 될 수 있던 원동력은 충분한 성능과 철저히 소비자 시장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x86 아키텍처를 대체할 순 없어도 충분한 대안으로 일정한 시장만 확보할 수 있어도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