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사재 털어 산 한국반도체... 메모리 세계 1위의 근간을 만들다
1992년부터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지속
2020-10-25 한주엽 기자
메모리 세계 1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회장은 반도체가 전자 산업계 근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결과로 보면 이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이 회장은 동양방송 이사로 재직했던 1974년 12월 사재를 털어 그해 1월 강기동 박사에 의해 설립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취득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회장은 3년 뒤인 1977년 12월 30일 잔여 지분 50%를 추가 인수했다. 이듬해 3월 2일 삼성반도체로 상호를 변경했다.
삼성반도체는 반도체 전후 공정 기술을 보유한 국내 최초 반도체 기업이었다. 그러나 운영 초기 기술 부족과 경영상 어려움으로 부도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1980년 1월 삼성반도체는 삼성전자로 흡수합병 됐다.
1982년 10월 삼성은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를 합쳐 삼성반도체통신을 출범시켰다. 삼성반도체통신은 이후 이병철 선대 회장의 '2·8 도쿄 구상'을 실현할 그룹의 핵심 사업체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2.8 도쿄 구상은 삼성의 반도체 사업 본격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 타계 1년 후인 1988년 11월 1일 삼성전자로 삼성반도체통신을 재차 흡수하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지금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이 11월 1일인 것은 1988년 당시 삼성전자가 삼성반도체통신을 흡수 합병한 날을 기념한 것이다.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D램부터 시작했다. 초창기 어려움을 겪었지만, 1M D램부터 경쟁국 일본보다 제품을 싸게 만들기 시작했다.
4M D램 제품과 관련한 이건희 회장의 일화는 유명하다. 1987년 당시 삼성전자는 4M D램 개발 방식을 스택(쌓는 방식)으로 할 것인지, 트렌치(파들어가는 방식)로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쌓여 있었다. 이건희는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원칙으로 고민을 타개했다. 쌓아 올리는 것이 파고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쉽고, 문제가 생겼을 때 회로를 고치는 것이 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판단은 성공했다. 4M D램에 이르러서는 일본과 동등 품질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6M D램은 품질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64M, 256M 제품은 드디어 일본보다 빠르게 개발에 성공했다.
1995년은 64M D램 시장이 본격 형성되기 시작한 해였다. 그 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당초 예상보다 40%나 초과한 8조1348억원 매출과 2조7192억원 영업이익이라는 경이로운 실적을 달성한다.
이건희 회장은 축포를 터뜨리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사사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세계 정상이 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정상에 서면 자칫 목표를 상실할 수 있다. 정상이 되기보다 정상의 위치를 고수하기가 더 어려운 까닭이다.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상은 언제나 위태로운 자리다."
과거 데이터퀘스트(가트너)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미 1992년부터 D램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도 그 순위는 변함이 없다. 낸드플래시 사업은 '원조' 도시바보다 늦게 시작했으나 그 시장에서도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위, 전체 반도체 시장에선 인텔에 이어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