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 측 "다른 기업처럼 삼성도 강요에 의해 지원한 것"
이르면 내년 1월 최종 결과 나올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1년 4개월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특검은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 중 최종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30일 오후 1시 40분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이 열리는 서울고법에 도착했다. 이 부회장은 검은색 승합차에서 흰색 마스크를 낀 채 하차했다. 차에서 내린 뒤 이 부회장은 법정을 향해 가는 동안 쏟아진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채 앞으로 나아갔다. 법원 앞에는 수십명의 취재진외에도 이 부회장을 비방하는 사람과 옹호하는 사람이 뒤섞여 법원 보안 관계자들이 삼엄하게 현장을 통제했다.
이날 오후 2시 5분 시작된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은 약 4시간 가량 진행됐다. 특검 측과 이 부회장 측의 최후 변론을 한 뒤 이 부회장의 최후 진술을 끝으로 마쳤다.
법원에 따르면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횡령 등 혐의에 대해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앞서 특검은 지난 1심과 항소심서 12년을 구형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이전보다 낮은 9년을 구형한 이유는 지난해 재산국외도피죄가 무죄로 최종 확정됐고, 미르와 K스포츠 출연금 204억원도 뇌물이 아니라고 판결난 것에 따른 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펼쳤다. 특검은 "뇌물공여의 경우 86억8081만원이 인정됐다"며 "피고인들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된 파기환송 전 항소심과 비교하면 뇌물공여 및 횡령 혐의가 50억여원이 증가해 그 액수만 고려해도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총수의 의지에 달린 준법감시제도를 이유로 법치주의적 통제를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된다"면서 "피고인의 공적 지위나 업무, 경제적 부분이 형사법 집행을 방해하는 방패막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을 과도한 엄벌을 해달라는 것도, 피고인이 우리 사회에 공헌한 바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다만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만 판단해달라는 것이 특검의 재판부에 대한 마지막 간청"이라고 당부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고 청탁하면서 대가성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지난 2017년 초 구속 기소됐다. 이 부회장은 1심 징역 5년을 선고받아 353일간 수감생활을 했다. 2심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으면서 2018년 2월 석방됐다. 이어진 대법원 상고심에서 지난해 8월 사건이 파기환송됐다.
이날 결심 공판에서 특검이 징역 9년을 구형한데 대해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제기한 뇌물공여가 '수동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다른 기업들처럼 삼성도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은 "박 전 대통령이 태블릿PC 보도에 대해 불만 토로하며 시정하라고 요구한 점을 보면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관계는 질책하고 질책받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 거래 심의를 강화한 점 등을 들어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최후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를 만들 것을 약속하겠다"면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본연의 역할에 부족함 없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을 것을 재차 다짐했다. 그는 "지난 5월 준법감시위 권고를 받아들여 경영권 승계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면서 "거듭 말하지만 제 아이들이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돼 언급되는 일 자체가 없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법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고(故) 이건희 회장을 언급하며 울먹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며 "모든 게 제 책임이고 죄를 물을 일 있으면 다 저에게 물어달라"고 했다. 이어 "함께 피고인석에 있는 선배들은 평생 회사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며 "너무 꾸짖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르면 내년 1월 최종선고할 예정이다. 재판 결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양형에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따라 달렸다. 작년 10월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첫 공판을 열고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특검이 반발하며 재판부 변경을 요청했으나 지난 9월 대법원이 특검의 기피신청을 기각했다. 올해 10월 파기환송심 재판이 재개되면서 30일 마무리됐다.
삼성은 재판 기간 동안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기업비전 제시, 혁신 경제로의 전환, 올바른 기업인의 자세 등 재판부의 권고를 이행했다.
삼성은 회사 및 최고경영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통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월 독립적인 준법감시 기구인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부회장은 5월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 삼성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국민들께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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