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투자 위해 과징금 대부분 포기 합의
긍정 효과 여러 곳에서 나타나
한국도 투자 유치 위해 이런 사레 참조해야
"그 약속은 달성됐습니다."
리 메이(李玫瑾, Li Mei) 대만 공정거래위원회(公平与效率成交委員會) 위원장은 작년 12월, 우리로 치면 국회인 입법원에서 "퀄컴이 7억달러를 대만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는가"란 질의에 이 같이 답했다.
중국(2015년), 한국(2016년), 유럽연합(2018년) 반독점 행정부가 퀄컴에 부과한 과징금이 각국별로 우리돈 1조원 정도 된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산업계 전반 이슈지만, 당시는 스마트폰과 롱텀에벌루션(LTE), 5G 인프라 등 통신 및 디바이스 기술에 투자자 자금이 몰리던 때였다. 퀄컴에 과징금을 부과한 이유는 통신칩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활용해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불공정하게 행했다는 것이었다.
대만 결정은 생소했다. 대만은 2018년 8월에 당초 부과한 1조원 가량 과징금을 1000억원 수준으로 깎아주는 대신 향후 5년간 나머지 돈(미화 7억달러)을 5G 등 자국 산업계에 투자하는 식으로 합의를 봤다.
이런 결정은 누가봐도 이례였다. 반발도 컸다. 두 명의 대만 공정위 위원은 이 결정이 불합리하다며 사임했다. 현지 최대 경쟁사인 미디어텍이 물밑에서 현지 언론과 모종의 접촉을 했는지는 확인 안되지만, 여론도 좋지 않았다. 풍전매(風傳媒) 등 대만 언론은 "이 결정이 대만 산업 발전에 부정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당시 대만 결정은 5G 기술 투자가 경쟁국 대비 늦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퀄컴이 투자해준다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에 뒤쳐진 5G 통신 인프라 체계를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듯 하다. 결과로 보면 '진정한' 5G(밀리미터웨이브를 활용하는)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뜨지 못했다. 그래서 대만 내에서는 아직도 투자 결과가 없다는 식의 비판 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긍정 영향이 굉장히 큰 것으로 판단한다. 한 가지 큰 사례가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퀄컴은 이 합의 후 대만 패키징 업계에 적잖은 투자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만 최대 패키지 테스트 업체인 SPIL에 퀄컴이 직접 구매해서 깔아놓은 장비 대수만 500여대라고 한다. 이 장비는 오로지 퀄컴 칩 후공정에만 활용된다. 인천 송도, 영종도에 있는 패키지 업계는 최근 몇 년간 퀄컴 패키지 테스트 물량 상당 수가 대만으로 빠져나갔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퀄컴과 대만 공정위 합의가 결과적으로 우리 물량을 뺏어간 결과로 돌아왔다"는 것이 국내 업계 관계자 얘기다.
지난해 반도체 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불황 한파로 SPIL 실적은 전년 대비 역성장했으나, 2018년부터 본다면 재작년까지 매년 견조한 매출 증가세를 이어왔다. 퀄컴은 장비 사주고, 매출 물량만 주는 것이 아니다. 상당 수 퀄컴 엔지니어가 SPIL에 상주하며 자사 물량이 제대로 생산되는 지 살피고 '지도편달'을 한다.
이런 노하우를 흡수, 축적하면 기술력이 되는 것이다. 현재 퀄컴의 프리미엄 칩 패키징은 인천 송도 엠코 공장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대만 기업과 계속적으로 밀접하게 일한다면 앞으로 그쪽에 큰 기회가 갈 수도 있겠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퀄컴의 투자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긍정 사례도 굉장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침 퀄컴이 대만에 투자를 진행하던 시기에 스냅드래곤 전공정 파운드리 물량도 삼성에서 대만 TSMC로 완전히 넘어갔다. 통상 칩이 양산돼 나오기 2년 전부터 파운드리 공정에 맞춰 설계를 시작한다. 이 합의 이후 퀄컴 최고경영진 마음이 동해서 그러한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아무튼 퀄컴 대만 및 동남아 지역 사장인 류스타이(劉思泰)는 일감 많이 주는 사람이라며 대만 쪽 생산 업계에선 '영웅'으로 칭송받는다고 한다.
대만 만큼 이례적이지는 않더라도 자국 내 첨단 산업 투자 유치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하는 국가가 있다는 점을 한국은 참조할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투자 유치를 위해 직보조금 경쟁이 한창인 지금이기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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