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 투자목적회사 통해 DB하이텍 지분 7.05% 매입
자사주 소각, 이사회 독립 요구...지주사 전환도 요구
DB하이텍 대주주 지분 17.84%…경영권 분쟁 본격화 전망
일명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행동주의 펀드 KCGI(케이씨지아이)가 DB하이텍 지분 7.05%를 매입했다. 지난 29일 DB하이텍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팹리스사업 물적분할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분매입 사유로 들었다. 자사주 소각, 이사회 독립 등도 요구했다. 앞서 한진칼,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매입에 나섰던 KCGI가 보인 전례를 볼 때, DB하이텍 대주주 측과 경영권 분쟁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
30일 KCGI는 "투자목적회사인 유한회사 캐로피홀딩스를 통해 DB하이텍의 지분 7.05%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KCGI는 DB하이텍 최대주주인 DB Inc(지분율 12.42%)에 이어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날 KCGI 측은 지분매입 공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지분확보 사유와 회사 측에 대한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먼저 물적분할 추진 과정을 문제 삼았다.
KCGI 측은 "(팹리스)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주 및 시장과의 소통 부족으로 소액주주들과 상당한 갈등과 반목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분할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므로 충분한 협의를 거쳐 주총에서 일반주주들만의 표결을 구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고 밝혔다. 또 "물적분할과 관련한 논란들과 자사주 매입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행위 제한 요건을 피해가기 위한 일시적인 대처라면, 이는 매우 근시안적 지배구조 개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DB하이텍은 지난 29일 주주총회를 열고 DB팹리스 물적분할 안건을 가결했다. 의결권 있는 주식 수 및 참석주주 주식 수(각각 찬성 53.0%, 87.1%)가 모두 가결요건을 충분히 넘어섰지만, DB하이텍의 기업가치 하락을 우려한 소액주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KCGI는 DB하이텍 주요 주주로서 자사주 소각,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KCGI 측은 "회사가 배당 확대, 1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계획을 밝힌 건 환영하지만, 자사주 매입이 우호지분 확보 등에 이용돼선 안된다"며 "자사주 소각까지 이뤄질 때 주주가치로 환원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사회 독립성 확보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KCGI 측은 ▲일반주주들이 임명한 독립적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상위원회 설치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DB그룹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자체 재원 마련을 통한 지분 추가 매입이나 주주총회 결의에 따른 주식교환 등을 통해 정당한 방법으로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확대하여 지주회사 전환을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KCGI의 7% 지분 확보로 DB하이텍은 향후 경영권 분쟁에 휩쌓일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DB하이텍의 최대주주 측 지분은 DB Inc(12.42%), DB생명(0.78%), 김준기 창업회장(3.61%) 등 총 17.84%다. 국민연금 지분은 8.34%다. 이를 제외한 소액주주의 지분은 75%에 달한다. KCGI가 소액주주와 연대의 뜻을 밝힌 만큼, 김남호 DB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와의 지분싸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KCGI가 앞서 보인 행태를 보면 지분확보 경쟁으로 갈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KCGI는 한진칼과 오스템임플란트에 대해서도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벌였었다.
업계 관계자는 "공시에 나온 KCGI 측 지분 확보 내역을 보면 220만주를 매입해놓은 뒤, 어제(29일) 92만여주를 추가 매입해, 주요 주주 공시요건인 5%를 넘긴 것으로 나온다"며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지분을 모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회피 가능성 등 DB하이텍 대주주 일가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신이 결과적으로 KCGI가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