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무진전자에 유통 사업권 계약 종료 통보
무진전자, 유통사업부문 경쟁사인 에스에이엠티로 넘기기로
올해 초 무진전자의 기술 유출 논란이 주 원인
삼성전자가 무진전자의 반도체 유통사업권을 박탈했다. 연 매출만 3000억원에 달하는 사업권이다. 더이상 무진전자에 반도체 유통물량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올해 초 무진전자 임직원이 반도체 핵심기술을 중국 업체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신뢰관계가 틀어진 게 결정적 이유다. 이에 따라 삼성과의 거래관계가 끊긴 무진전자는 반도체 유통사업 부문(사업망, 인력)을 9월부터 에스에이엠티에 전부 넘기기로 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6월 말 무진전자와 맺은 반도체 유통사업권 계약을 종료했다. 무진전자 측에 더이상 유통사업 거래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무진전자는 반도체 유통사업 부문을 또 다른 전자부품 유통업체인 에스에이엠티에 모두 넘기기로 했다. 삼성전자로부터 더이상 물량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을 유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무진전자의 사업권 이관은 삼성전자로부터 사후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에스에이엠티는 9월 중 무진전자의 사업망과 관련 인력을 모두 넘겨받을 예정이다.
무진전자는 설립 첫 해인 1996년부터 삼성전자와 반도체 대리점 계약을 맺는 등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기업이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등 다양한 전자부품을 유통하는 게 주 사업이며, 세정장비 등 반도체 장비 사업도 한다. 이 회사의 유통사업 부문 매출은 연간 3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이번 사업권 박탈은 올해 초 불거진 무진전자의 기술유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 1월 검찰은 무진전자 임직원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제조 기술을 중국 업체에 유출한 혐의를 적발해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무진전자 측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의 세정장비 관련 기술도 중국 업체에 넘기려 했다는 혐의도 밝혀냈다. 검찰 기소내용에 따르면 무진전자 측은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임계 세정장비 기술도면을 중국 업체의 요구에 따라 유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선 기술유출 논란을 일으킨 무진전자와 거래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 유통사업권까지 박탈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무진전자의 사업권을 넘겨받는 에스에이엠티는 삼성전자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회사다. 이 회사는 1990년 6월 삼성물산이 반도체 내수판매를 위해 세운 자회사로 출발했다. 최초 설립 때 사명은 '삼테크'로 삼성물산 출신 이찬경 대표가 경영을 맡았다. 이후 1995년 삼성물산으로부터 독립했고 2005년 사명을 현재의 에스에이엠티로 바꿨다.
키코(KIKO)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고서 2015년 삼지전자에 인수된 이후에도 에스에이엠티와 삼성전자의 관계는 끈끈히 유지됐다. 현재 에스에이엠티의 성재생 회장은 삼성전자 상무 출신이다. 박두진 대표는 삼성전기 출신이며, 감사를 맡고 있는 오세영씨도 삼성전자 전무 출신이다. 올해 초에는 강호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에스에이엠티가 무진전자 사업권을 확보함에 따라 삼성전자 반도체 유통사업은 종전 4개사에서 3개사로 줄어들게 됐다. 그간 삼성전자 유통사업권은 에스에이엠티, 무진전자, 신성반도체, 미래반도체 등 4개사가 도맡았다.
이 가운데 최대 물량을 확보한 곳은 에스에이엠티다. 지난해의 경우 에스에이엠티 매출은 1조2405억원이었으며, 무진전자 3553억원, 신성반도체 2807억원, 미래반도체 2182억원이었다. 반도체 유통사업 매출은 에스에이엠티가 1조2389억원으로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약 3000억원의 무진전자 물량을 확보하면 에스에이엠티의 올해 매출은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무진전자 유통물량이 4분기에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연간 기준 2조원 안팎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에스에이엠티 관계자는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게 아니어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다"면서도 "4개 유통업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보니 우리가 (무진전자) 사업권을 이관받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거래가 끊긴) 무진전자가 자구책 차원에서 에스에이엠티에 먼저 사업권 이양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며 "삼성전자의 최종 승인이 떨어진만큼 사업권 이관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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