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SK가 또 다른 성공 스토리를 완성해 나갈지 주목된다.
지난 2020년 초 SK가 400억원에 인수한 금호석유화학 전자소재사업부문(현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 얘기다. 일본 기업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3D 적층 낸드플래시 생산에 최적화된 두꺼운(thick) 불화크립톤(KrF) 포토레지스트(PR)를 개발하고 SK하이닉스 평가를 진행 중이다.
두꺼운 PR는 국내서 동진쎄미켐만이 개발 완료 후 삼성전자에 단독 공급하고 있었다. SK하이닉스 공급망에서도 이러한 재료가 개발 완료되괴 양산 적용되면 공정 경쟁력이 크게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낸드플래시 시황이 정상화되고 생산량이 확대되면 두꺼운 KrF PR을 판매해서 얻는 매출이 상당히 높은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이하 SKMP)가 개발한 두꺼운 KrF PR은 최근 SK하이닉스로부터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웨이퍼에 발랐을 때 PR 두께가 14~15마이크로미터(㎛)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동진쎄미켐이 삼성전자로 공급하는 PR과 동등한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JSR도 관련 PR 개발을 시도했으나 최대 두께가 10㎛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3D 낸드에서 두꺼운 PR을 활용하는 이유는 적층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100단짜리 3D 낸드를 만들려면 이른바 계단을 100개 형성해야 한다. 한 번에 한 개씩 만들면 원가가 너무 올라간다. 두꺼운 PR를 활용하면 한 번에 여러 계단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두껍게 발라진다는 것은 점도가 높다는 의미다. 높은 점도 재료는 발랐을 때 균일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개발이 쉽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3년 1세대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기 전부터 동진쎄미켐과 두꺼운 KrF를 개발하기 위해 협업했다. 개발 완성품은 오로지 삼성전자로만 공급됐다.
이런 가운데 SKMP가 삼성 양산 라인에 들어가는 PR과 동등 수준으로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SKMP 두꺼운 KrF PR은 낸드 시황 회복 후 SK하이닉스 238단 3D 낸드 생산량이 확대될 때 본격적으로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SKMP가 주요 PR 조달처로, JSR이 두 번째 조달처로 이름을 올리는 그림이다. 민감한 공정에는 SKMP 재료가,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공정에는 JSR 재료가 쓰인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238단은 월 웨이퍼 투입량이 5000매 수준에 불과하지만, 차츰 증산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평가 결과에 따라 SKMP 실적의 큰 폭 개선은 시간 문제"라면서 "최종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SK트리켐에 이은 소재사 인수합병(M&A)의 또 다른 성공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SKMP 매출은 SK 품으로 들어온 이후 증가세다. 지난해 매출은 622억원, 영업이익은 8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 각각 92%, 1120% 증가한 수치다.
PR은 노광 공정에서 쓰이는 핵심 재료다. 노광은 금속으로 설계 패턴이 새겨진 마스크 원판에 빛을 쪼여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마스크를 투과한 빛이 PR과 반응해 패턴을 형성한다.
노광 공정은 광원 종류에 따라 세대가 나뉜다. 130나노 반도체까진 파장 길이가 248나노미터(nm)인 불화크립톤(KrF) 엑시머 레이저를 사용했다. 90나노대로 접어들면서 193nm 파장의 불화아르곤(ArF) 엑시머 레이저를 활용하게 됐다. 이후 공기보다 굴절률이 큰 액상 매체를 활용해 해상력을 높인 액침(液浸, immersion) ArF 장비가 상용화됐다. 현재 대부분 최신 반도체 양산 라인에서 쓰이는 주요 노광 장비가 액침 ArF다. 최근 최신 노드의 경우 13.5nm 짧은 파장을 갖는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3D 낸드플래시는 높게 쌓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2D처럼 선폭을 좁히는 것이 큰 고려 사항은 아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3D 낸드 초기 양산 때부터 구형 KrF 노광 설비를 활용했다. SK하이닉스도 방향은 비슷하지만 세부 내역에선 큰 차이가 난다. KrF 보다 더 노후한 공정에 썼던 I라인 노광 설비를 활용했던 것. 128단은 거의 전량, 176단에서도 일부 중요한 셀 공정을 제외하면 I라인 설비를 썼다. 이른바 '마른 수건 쥐어짜는' 전략을 낸드에서도 활용해 온 것이다.
I라인용 PR은 일본 JSR과 TOK, 동진쎄미켐이 각각 4:4:2 비율로 공급했었다. 일부 활용했던 KrF 공정에선 JSR이 주요 공급사로, 머크(구 AZ)가 두 번째 공급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디일렉=한주엽 기자 [email protected]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자동차전장·ICT부품 분야 전문미디어 디일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