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D "특허 무단 사용한 OLED 미국 수입·판매 중단 신청"
상대 17개 수입업체 등, 수리권·특허소진론 등으로 맞설 듯
"삼성D의 특허침해조사 신청, 중국 BOE 겨냥" 풀이도 나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디스플레이의 수리용 OLED 특허침해 신청 건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자사 특허를 무단 사용한 수리용 OLED에 대한 미국 수입·판매 중단을 신청했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의 특허를 침해하며 OLED를 생산 중인 업체는 BOE 등 중국 패널 기업이어서, 이들을 겨냥한 조치라는 풀이가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의 특허침해조사 신청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모델 애플 아이폰12는, BOE가 지난 2020년 애플로부터 수리용 OLED로 가장 먼저 승인을 받은 모델이다. 동시에, 삼성디스플레이 신청을 ITC가 모두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삼성디스플레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만든 수리용 OLED는 이번 조사 결과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최근 미국 등에서 확산 중인 소비자 수리권 확대 움직임과도 충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ITC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모바일 기기용 특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과 모듈, 관련 부품에 대한 특허침해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특허침해조사를 신청한 업체는 삼성디스플레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지목한 피신청자는 17개 미국 수입업체다. 이들 수입업체가 직접 수리 서비스까지 제공하는지 여부는 이후 ITC의 증거조사(디스커버리)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들 17개 기업이 미국으로 수입해 판매 중인 OLED가 자사 다이아몬드 픽셀 등의 특허 4건(9,818,803·10,854,683·7,414,599·9,330,593)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사 특허를 침해한 수리용 OLED 패널이 사용됐다고 지목한 스마트폰 모델은 애플 아이폰12와 12프로, 삼성전자 갤럭시S9~S22 시리즈 등이다.
수리용 OLED는 소비자가 사용하던 스마트폰에서 OLED 파손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용하는 교체용 부품이다. 업계에선 '리퍼브'용 OLED라고 부른다. 최근 미국·유럽 등에서는 소비자 수리권 확대 움직임과 함께, 이처럼 스마트폰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서드파티) 수리업체가 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들 사설 수리업체가 수입해 사용하는 OLED 일부 제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조사 신청서에서 해당 패널이 중국 선전 등에서 생산됐지만 제조사와 제조지역이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특허침해 혐의품에 대해 일반적 배제명령(GEO:General Exclusion Order)과, 중지명령(CDO:Cease and Desist Order)을 신청했다. 특허침해조사에서 대표적 구제조치인 배제명령(Exclusion Order)은 일반적 배제명령(GEO)과, 제한적 배제명령(LMO:Limited Exclusion Order)으로 나뉜다. 일반적 배제명령은 삼성디스플레이가 피신청자로 지목한 17개 업체는 물론,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업체의 수입에 대해서도 금지를 요청하는 것이다.
ITC가 해당 17개 기업에 대해서만 수입금지를 명령하면, 또다른 업체가 기존 경로를 우회해서 미국으로 수입한 제품을 판매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반적 배제명령이 어렵다면 제한적 배제명령을 내려달라고 신청했다. 중지명령은 이미 수입된 제품에 대해 판매금지를 요청하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ITC에 특허침해조사를 신청한 것은 BOE 견제와, 최근 소비자 수리권 확대 움직임 대응 등이 함께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BOE 등 중국 패널 업체는 세트업체에 양품으로 납품하지 못하는 B급 패널을 자국 내 암시장에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B급 패널은 미국으로 수출돼 아이폰과 갤럭시의 수리용 OLED로 사용될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미 지난해 초 BOE 등을 상대로 특허침해를 경고했다. 동시에 사설 수리업체가 사용하는 OLED에 대해 특허침해를 이유로 ITC에 수입금지를 요청하는 것은 고객사인 애플과 삼성전자의 이해관계와도 배치되지 않는다.
또 미국·유럽 등에선 소비자가 자신이 구매한 전자제품을 손쉽게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수리권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제조사의 공식 서비스 업체 외에 사설 수리업체가 늘어야 한다거나, 소비자가 수리 키트를 구입해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전자제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특허침해조사 신청서에서 삼성디스플레이는 수리용 OLED를 '연간 수백만대'(millions of displays each year)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한해 애플 아이폰 OLED만 1억2000만대 이상 납품하는 점에 비춰보면 '연간 수백만대'는 충분한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로 보인다. 향후 사설 수리업체에서 내놓을 수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주장이 수용되면 미국 소비자에게 필요한 수리용 OLED 공급이 부족하거나 늦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의식한 표현으로 추정된다.
이는 ITC 특허침해조사가 '공익'을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다. ITC는 특허침해라고 판단해도, 수입금지 명령을 내리기 전에 해당 결정이 공익과 어긋나는지를 고려한다. 수입금지가 미국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물품에 대한 수입금지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 ITC 판단에서 단순한 비용 절감은 공익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번 분쟁에서 피신청자로 지목된 17개 업체는 소비자 수리권과 공익, 특허소진론 등으로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는 이미 구매한 제품을 자유롭게 수리·처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수리권 등에 내포돼있다. 또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사 특허를 적용한 OLED를 애플 등에 공급한 뒤로는 특허권을 추가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특허소진론), 판매 후 소비자 선택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이들이 주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에 대해 "가짜 제품 사용을 권하는 것이냐"란 프레임을 내세울 수 있다.
한 특허업계 관계자는 "수리용이라고 해도 특허침해품을 수입·사용한다는 것은 공정한 항변은 아니다"면서 "충분히 정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소비자권 보호란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러한 항변으로 일관한다면 특허침해를 시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ITC 특허침해조사에서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필요한 기간은 14~18개월이다. 통상 2~3년이 걸리는 연방지방법원의 특허침해소송보다 짧게 걸린다. 특허심판원(PTAB)에 해당 특허에 대한 무효심판이 제기되더라도, ITC의 특허침해조사가 이미 개시됐기 때문에 향후 PTAB 상황과 무관하게 ITC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ITC 소속 행정법판사(ALJ, 1인)가 예비심결을 내리면, 6인으로 구성된 ITC 위원회에서 최종심결을 내린다. 이후 대통령이 승인하면 최종 확정된다.
대통령이 ITC 최종심결을 승인할 경우, 이에 불복하는 이는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에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이 ITC 최종심결을 거부할 경우, 신청자와 피신청자 모두 불복할 수 없다. 과거 2013년 ITC에서 애플이 삼성전자의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며 아이폰 수입금지 결정을 내렸지만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