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클에 초과공급 이뤄지면 가격하락폭 커져"
미국 어드밴스드 패키지 공장 투자는 계획대로 진행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최근 메모리반도체 업계 상황에 대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D램 시장이 사실상 3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과점체제인데, 아무리 전방 수요가 부진하다해도 지금의 가격하락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주주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다. 좀처럼 '업턴'으로 가지 못하는 메모리 시황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29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제75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날 주총에선 메모리반도체 업황 부진의 이유와 타개책을 묻는 주주들의 질의가 잇달았다.
한 개인주주는 "메모리 업계가 기술개발에 매년 20조원이 넘는 설비투자를 하는데도, 다운턴만 되면 영업적자를 우려해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첨단 기술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고객사(D램 수요기업)와의 가격협상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느냐는 질문이다.
'죄수의 딜레마' 발언은 여기서 나왔다. '죄수의 딜레마'는 심리학에서 나온 용어다. 두 사람이 협력적 선택을 하면 모두에게 최선인데도,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으로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박 부회장은 "저도 직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 D램 업계는 3개사밖에 없는 과점 시장인데, 왜 가격 널뛰기가 심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데 결국은 공급의 양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D램 시장은 전방산업의 업황, 3사의 공급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라며 "현재 D램 산업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객사 입장에서 보면 메모리 기업 3곳이 (다운사이클에도) 엄청난 공급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고객사에서는 가격을 지속적으로 내릴 수 있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 “다운싸이클에서 공급이 초과하는 국면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러한 반도체 가격 하락폭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담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박 부회장이 죄수의 딜레마를 언급한 건 수개월째 지속되는 메모리 다운사이클에 대한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가격하락은 계속되는데 고객사와 가격협상에서 계속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박 부회장은 "다운사이클에서는 메모리 기업이 불리한 구조이지만, 업사이클에서는 메모리 기업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사이클 진입시엔 고객사들이 메모리 공급계약을 단기가 아닌 장기로 체결할 것을 요청하거나 메모리를 인프라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향후 업황에 대해서는 박 부회장은 "다운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며 "(적정한) 가격 형성을 위해 고객사와 지속적으로 밴드위스(bandwidth)를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설비투자 50% 삭감과 관련해 경쟁사와 기술격차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박 부회장은 "기술 경쟁을 멈추겠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양산까지 가는 일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되는지를 고민하겠다는 얘기"라고 했다.
한편, 박 부회장은 주주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대중 수출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1년 유예와 관련해 추가 유예를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내 장비 반입 유예조치는 오는 10월로 종료된다. 박 부회장은 미국에 건설하려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 계획 중인 패키지 공장 검토는 마무리돼 조만간 (투자가)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보조금을 신청할지는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디일렉=노태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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