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EV) 배터리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뜻을 내비쳤다. 외국 법정에서 국내 기업이 송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산업부가 양사 소송전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 기업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견지해 부담이다. 업계 일각에선 산업부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이 가능하도록 핵심기술 수출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전체회의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소송전에 개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성 장관은 “양국 기업들이 외국에 있는 법정에서 다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서로 앞으로 보다 더 건설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산업부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종구 산업위 위원장이 과거 우리 기업끼리 다툼이 있으면 산업부가 지도에 나섰고, 장관이 직접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을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성 장관은 이 위원장이 지적한 내용에 대해 충분히 동감한다고 강조했다.
산업부 장관이 적극적인 개입 의사를 밝혔지만, 양사를 원만히 화해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지난 6월 초에 정승일 산업부 차관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담당 임원을 잇따라 불러 의견을 들어봤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LG화학의 소송 의지가 워낙 강해 만류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굳이 ITC를 끌어들이면서 소송을 해야 하는지, 소송을 위한 핵심기술 수출 승인에 대한 중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산업부는 LG화학의 요구를 받아들여 소송에 필요한 핵심기술 수출을 승인했다. 화해의 자리를 만든다고 해서 양사가 얼마나 수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LG화학은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 손해배상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사과할 일이 없으니 손해를 배상할 근거가 없다는 태도다. 입장차가 워낙 커서 양사 최고경영자(CEO)끼리 만남이 이뤄져도 극적인 타결은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SK그룹이 총수끼리의 만남을 통한 이른바 ‘대타협’을 고려했으나 LG그룹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도 이 사안에 관해 관심이 커지고 있고 중국, 일본 등 경쟁국에 좋은 일만 시켜준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의외로 산업부가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