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역사 상 큰 의미를 갖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국을 모두 제치고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기술이 최초로 양산에 적용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 신기술은 바로 극자외선(EUV) 노광기술이다.
삼성전자의 EUV 기술 도입은 최신 기술의 양산 최초 도입이라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메모리 중심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시스템IC와 파운드리 비즈니스 강화라는 더욱 중요한 전략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세계에서 최고로 앞서 나가는 이 상황이 참으로 뿌듯하면서도 걱정도 깊다. 신기술 적용에서 어떠한 기술적인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위치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당장 양산 추진에 걸림돌이 있는데, 바로 EUV 펠리클의 부재이다. 펠리클은 마스크 오염으로부터 기인하는 웨이퍼 불량을 저감할 목적으로 활용돼 왔다. 말하자면 제작이 완료된 마스크 전면에 부착하는 오염방지 부품이다. 마스크 표면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투과도가 높은 박막을 위치하게 함으로써, 마스크 표면 대신에 그 박막이 오염되게 하는 원리다.
이렇게 되면 펠리클 표면의 오염물이 왠만한 크기(약 10 마이크로미터)가 아닌 이상 웨이퍼 불량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활용하고 있는 DUV용 펠리클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 요구되는 EUV 펠리클은 기술적 난재로 인해 아직 상용화 제품이 없는 실정이다.
아직 상용화 제품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다. 첫 번째는 EUV라는 파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EUV는 모든 물질에서 흡수도가 매우 큰 독특한 파장이다. 고체와 액체는 물론 기체도 EUV를 강력히 흡수한다. 박막 형태로 EUV 펠리클을 제작할 때 허용이 되는 박막의 두께는 60나노미터(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이며 그나마 활용이 가능한 소재도 극도로 제한된다.
개발 목표치인 90% 투과도를 갖는 펠리클을 만들어 적용한다고 해도 반사형 마스크 원리 때문에 펠리클을 두 번 통과해야하는 EUV는 그 광량이 19% 감소하므로(1-0.92 = 0.19) 생산성에 큰 손실을 받게 된다. 현재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현실적인 투과도는 88%로, 이를 만족시키는 제품은 개발돼 있지 않다.
두 번째는 열적인 특성이다. EUV가 펠리클 박막에 흡수되면 그 흡수 에너지는 대부분 열에너지로 변환돼 펠리클 박막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펠리클 구조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냉각이 쉽지 않다. 냉각의 메커니즘은 전도(conduction), 대류(convection), 방사(radiation)의 세 가지 원리가 존재하는데 EUV 펠리클은 매우 얇아서 단면적이 작으므로 전도에 의한 열전달이 거의 없다. 그리고 EUV 노광장비는 고진공을 유지하므로 대류에 의한 냉각도 쉽지 않다. 그러나 마스크(펠리클) 부근에는 국부적으로 수소 라디칼의 흐름을 만들어 주고 있어, 대류에 의한 냉각 효과가 약간은 있을 수 있긴 하다.
마지막으로 방사라는 메커니즘이 EUV 펠리클의 주된 냉각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EUV 투과도가 높은 실리콘(Si) 계열의 물질들은 방사율(emissivity)이 높지 않다. 특히 두께가 낮아짐에 따라 방사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따라서 노광공정 시 EUV광이 스캐닝되면 약 600-1200℃까지 순간적으로 가열되었다가 실온까지 냉각되는 열충격이 반복되게 된다.
고온에 의한 펠리클 박막의 변형 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열충격에 의한 피로파괴가 일어난다면 펠리클로서의 성능을 잃을 뿐만 아니라, 파괴로 인한 노광기 쳄버의 오염은 노광장비 운영에 있어서 큰 재난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기계적 특성이다. 펠리클을 장착한 상태로 마스크가 이송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충격, EUV 노광장비에 장착된 이후에 진공환경을 위한 펌프다운 과정에서 펠리클 양면에서 발생하는 압력차이, 고속으로 움직이는 마스크 스테이지에 의한 기계적인 충격 등에서도 파괴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기계적 강도가 요구된다. 그러나 수십 나노미터 두께의 극박막으로서는 이러한 기계적인 강도를 확보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위와 같은 성능을 갖는 EUV 펠리클 소재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앞선 곳은 ASML이다. ASML은 직접 펠리클을 제작하고 있지는 않지만, 펠리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관련 인프라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140명 이상의 인력을 EUV 펠리클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ASML의 기술지도에 따라 직접 EUV 펠리클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는 캐나다의 텔레다인(Teledyne) DALSA라고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파운드리 사업을 하면서 멤브레인과 관련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폴리실리콘 박막을 기반으로 한 EUV 펠리클을 개발하고 있다. Ru/SiN/Poly-Si/SiN의 다층 구조로 현재 약 83%의 투과도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더 우수한 투과도 요구나 고출력 광원에 대응하는 성능의 달성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벨지움의 IMEC은 카본나노튜브(CNT)를 이용한 다공성 펠리클을 개발하고 있는데 다공성 구조의 특성상 평균 투과도가 높고 압력 변화에 안정하지만, CNT 자체로는 사용 환경인 수소플라즈마에서 안정하지 않아 보호막의 증착이 요구된다. 그러나 최근에 새로운 결과의 발표가 없어 이 보호막의 공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판단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나노그래파이트 필름 소재를 펠리클 용도로 연구개발 중이다. 탄소소재 중 그래핀이라는 특별한 소재의 강도를 활용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대면적화의 가능성이 걸림돌이라 볼 수 있다.
DUV용 펠리클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FST사도 실리콘카바이드(SiC) 소재의 EUV 펠리클 연구개발을 진행해 왔는데, 소재의 강도와 투과도를 장점으로 보고 있으나 필름제작 후 프레임 접착이라는 기존의 펠리클 제작 공정으로는 주름을 제거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일의 블랭크 마스크 제조사인 에스앤에스텍도 EUV 펠리클 개발에 뛰어 들어 단결정 실리콘을 이용한 풀 사이즈 펠리클 시제품을 완성해 지난 9월 미국에서 개최된 EUVL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바 있다. 아직 결함과 열방출 대책에 대한 추가 개발과 수율의 향상을 위한 기술의 확보가 필요한 실정이지만, 단결정 실리콘막과 Ru 열방출층 구조로 88%의 투과도를 확보하였고 양산에서 요구하는 대면적 스펙을 만족한 국내 유일한 결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년간 EUV 노광과 관련된 연구를 계속해 온 한양대학교는 기업에서 활용 가능한 다양한 EUV 펠리클 관련 기반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EUV 펠리클의 특성을 평가할 수 있는 인프라를 모두 갖추고 있다. 실리콘 질화막으로 83%의 투과도를 갖는 풀 사이즈 펠리클 기술과 Ru을 이용한 열방출층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나, 고출력 EUV 노광기술에 응용 가능한 새로운 펠리클 소재의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현재는 펠리클 없이 EUV 노광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는데, 이것이 펠리클이 불필요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양산에서 요구하는 성능의 EUV 펠리클이 개발 된다면 새로운 사업영역이 활짝 열리게 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전세계 EUV 펠리클 시장을 석권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ASML은 개발 중인 EUV 펠리클을 연구개발용으로 판매 중에 있지만,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펠리클 한 장당 약 1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양산개발이 완료되면 당연히 가격 하락이 있을 테지만, 기술적 난이도에 의해 고가로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 EUV 관련 대부분의 사업영역이 독과점 형태로 개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EUV 펠리클도 승자 독식의 시나리오가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