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만난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단독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기차(EV) 배터리 협력 방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현대차는 삼성이 만든 전기차 배터리를 사용한 전례가 없다. 1990년대 삼성그룹이 완성차 사업에 진출하며 양사 관계가 소원했기 때문이다.
회동을 계기로 현대차가 삼성SDI 배터리 도입을 결정하면 LG화학,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한 배터리 3사 모두 현대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된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현대차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인 E-GMP에 배터리 공급을 성사시킨 바 있다. 삼성SDI가 포함되면 현대차는 '삼성-SK' 투톱 조달처를 확보하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여러 재계 모임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선대의 악연을 뒤로하고 새로운 관계 정립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주요 경영진은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전기차 배터리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는 양사 총수를 비롯해 전영현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 서보신 상품담당 사장 등이 참석한다.
업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2025년 이후 상용화가 예상되는 전고체 배터리 보단 현재 널리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강조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삼성전자 주도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고 삼성SDI 천안사업장은 5년 이내에 대량 생산될 배터리 핵심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파일럿 라인이 구축되어 있다. 2017년 마련된 이 라인에는 올해부터 삼성SDI가 생산할 5세대(젠5) 배터리 생산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현대차는 내년 초 양산하는 전기차 플래폼 E-GMP용 배터리 공급사로 SK이노베이션을 선정한 바 있다. 5년간 약 50만대 분량이다. 계약규모만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기아차까지 포함해 전기차에 사용할 배터리를 몇 차례 더 추가 발주할 계획이다. '현대차=LG화학, 기아차=SK이노베이션'으로 굳어진 배터리 조달처를 바꾼다는 의미다.
삼성SDI와의 협력은 각국의 환경 규제와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것과 무관치 않다. 현대차 입장에선 값싸고 질좋은 배터리를 대량으로 확보해야 한다. 합작사 혹은 자체 배터리 생산도 염두에 뒀으나 그동안 관계가 없었던 삼성SDI와 협력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삼성SDI가 현대차에 배터리 공급을 타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양사 사이의 문제는 총수가 매듭을 풀어야 진행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