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질(質)을 위해서라면 양(量)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과 질의 비중을 아예 0:10으로 가자는 것"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신(新)경영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했다. 1987년 11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지 6년만이었다.
이 전 회장은 독일 프랑크프루트로 가기전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온 일본인 고문과 삼성의 문제점에 대해 회의를 했다.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당시 회의에서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 고문은 "일류상품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고 상품기획과 생산기술 이 일체화 되어야 하는데, 삼성은 상품기획이 약하다"며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고 했다.
프랑크프루트에 도착한 이 전 회장은 품질고발 사내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탁기 조립라인에서 세탁기 뚜껑을 즉석에서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내용이었다.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는 불량이 발생했었다.
이 전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 두달간 독일, 스위스, 런던, 일본 등지에서 사장단,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연인원 1800여명을 상대로 회의와 교육을 했다. 당시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시간은 350시간이며 A4 용지 8500매에 해당한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라인스톱 제도'와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을 이 전 회장의 신경영이 적용된 대표 사례로 꼽았다.
라인스톱제는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가동을 중단하고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하는 제도다. 삼성전자는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인을 세워야 하는 생산 담당자들에게는 상당한 고통이었지만 효과는 컸다"며 "1993년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었다"고 했다.
신경영 선언 1년 뒤인 1994년 당시 삼선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의 불량률은 11.8%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 전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라며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1995년 1월 불량품을 새제품으로 교환해주라는 지시를 내린 이 전 회장은 수거된 제품을 소각해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1995년 3월 화형식에서 불량 무선전화기 15만대를 소각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150여억원어치의 제품이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됐다"며 "자기 손으로 힘들게 만든 제품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임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고 했다. "전 임직원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이후 불량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저작권자 ©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디일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