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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제2의 단통법’ 밀어붙이는 정부
[발행인 칼럼] ‘제2의 단통법’ 밀어붙이는 정부
  • 장지영 발행인
  • 승인 2024.01.31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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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실험’에 ‘마루타’ 된 기업들
(문제) 윤석열 대통령은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경쟁을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윤 대통령의 기조에 부합하는 정책을 모두 고루시오. ① 단통법(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 전면 폐지 ②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 제정 ③ 기업 자사주 제도 개선안 ④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시행 ⑤ 영화 홀드백 6개월 의무화 추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 화제를 모은 정책들이다. 과연 정답은 몇 개일까? 대표적인 반시장 규제로 꼽힌 단통법 폐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오히려 기업의 부담을 가중하는 새로운 규제들이다. 시장경제 우선주의를 의제로 삼아온 보수정권의 이념과 완전히 배치되는 정책도 있다. 앞뒤가 안 맞는 신문을 보는 느낌이다. 1면에는 ‘규제가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라는 의견 기사를 내고, 사설에서는 ‘규제가 없어 편법이 횡행한다’라는 정반대 논조를 피력한다. 이런 신문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단통법은 제정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선진국에는 없는 한국만의 규제법이었다. 그것도 시장에서 마케팅을 제한하는 매우 이례적인 규제여서 비판이 거셌다. 시장 자율경쟁을 제한하자 어떤 결과가 벌어졌는가.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가 대놓고 담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호갱(호구+고객)을 막겠다는 취지와 달리 전 국민이 호갱으로 전락했다.
단통법 전면 폐지는 정부가 정책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단통법을 밀어붙인 장본인은 박근혜 정부다. 그 맥을 잇는 지금의 보수정권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 10년간 국민은 잘못된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 뒤늦게 바로 잡기로 해 다행이지만, 잘못된 정책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마땅히 뒤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제2의 단통법’을 다시 밀어붙일 기세다.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은 시장경쟁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특정 기업을 시장지배자로 지정해 사전에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과 구글, 애플, 아마존 등 해외 빅테크가 규제 대상으로 거론된다. 최근 미국상공회의소가 플랫폼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피력하면서 무역분쟁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업계에선 시장경쟁을 제한함으로써 혁신이 멈출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업 자사주 제도 개선안도 기업에 큰 부담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으로 추진됐지만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와 같은 강도 높은 규제까지 거론됐다.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도입은 시장주의를 표방한 보수정권의 이념과 전면 배치된다. 땀 흘려 경영성과를 낸 기업 리더들을 장려하기는커녕 ‘예비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홀드백 6개월 의무화' 역시 반시장적 규제로 꼽힌다. 영화 상영 후 6개월이 지나야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허용하겠다는 정책이다. 한 달이면 불법 복제물이 유통되는 마당에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보다 규제 혁파를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바뀐 것인지, 이런 방침이 정부부처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인지, 정치적 이해관계나 표를 의식해 여론에 영합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 안 듣는 기업들을 손보기 위한 것인지, 갑자기 ‘규제 공화국’으로 바뀐 이유가 궁금하다. 기업 현장에선 “기존 규제를 없애지 않더라도 새로운 규제라도 제발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구호로 내세웠던 윤 대통령에 대한 믿음도 점점 식어간다. 정부 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가른다. 마차 살리려고 자동차를 죽인 영국과 아우토반(고속도로)을 깔아 자동차를 키운 독일의 사례는 교과서처럼 거론된다. 정부는 지금 수립 중인 규제 정책이 ‘제2의 단통법’이 아닌지 원점에서 살피는 자기검열이 필요하다. 5년 뒤, 10년 뒤 또 폐지될 것이라면 애당초 시작부터 말아야 한다. 우리 기업이 언제까지 살벌한 규제 실험의 ‘마루타’ 신세가 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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