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휴먼시대 ‘일자리 뇌관’ 성숙한 논의 시작해야
'No Human, No Light.’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가 한때 구상했던 스마트 팩토리의 개념이다. 사람도 불빛도 없는 ‘암흑상자’와 같은 공장에 부품을 넣으면 완제품이 나온다. 사람이 없으니 환한 전깃불을 밝힐 필요도 없다. 인건비와 전기료를 획기적으로 줄일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와 같은 안전사고 걱정도 없애준다.
꿈같은 구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테스트) 공장을 완전 무인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람 손이 필요한 작업을 없애 2030년까지 100% 무인 공장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장비 협력사에 무인·자동화 기능을 필수사양으로 요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휴대폰이 아닌 반도체 사업부에서 속도를 내는 게 눈에 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사고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과거 직업병 이슈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 뒤 인명 피해를 줄여줄 무인 공정 전환에 속도를 냈다.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구현하는 전공정 팹의 경우 무인화가 90% 이상 진행됐다. 사람 손이 많이 가던 후공정 팹까지 자동화한다면 그야말로 ‘암흑공장’이 탄생한다.
공장 무인화는 대세가 될 공산이 크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정도로 빠르게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구인난도 무인화를 가속화 한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강력한 규제의 대안으로 무인 공장이 급부상 중이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안전사고 걱정도 없애준다면 경영자로선 무인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규제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아예 뺏는 방아쇠가 된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무인화 물결은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예고한다. 지난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군중이 구글의 무인 자율주행택시 ‘웨이모’ 차량을 부수고 불태운 사건이 발생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벌어진 기계 파괴(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무인 택시가 결국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불안과 반감이 군중 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4차 산업혁명의 숨겨진 뇌관은 ‘일자리 논쟁’이다. 매킨지 글로벌연구소는 AI와 로봇 등 자동화 기술이 현재 일자리의 50%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50년이면 100% 자동화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산업화 시대처럼 더 많은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반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진보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 기술이 인간 노동을 돕거나 보완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현재 기술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게 핵심이다.
강력한 AI와 로봇이 지배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까지 거론된다. 앞으로 정교한 AI 로봇을 보유한 기업은 부를 독식하는 ‘슈퍼스타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기업이나 국가는 생산성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미래학자들은 AI를 지닌 자가 전체 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초양극화 시대를 전망한다. 최근 샘 올트만 오픈AI CEO가 자체 AI칩 생산을 위해 9300조원의 천문학적인 펀딩에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큰 자본을 투입해도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술 진보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와 같다. 기계 파괴 운동처럼 AI와 로봇을 거부하는 건 거대한 수레바퀴와 맞서는 겁 없는 사마귀와 다름없다. 결국 기업이 망하고 일자리 터전마저 잃게 된다. 공멸로 가는 길이다.
삼성전자의 무인 공장 추진과 웨이모 방화 뉴스는 ‘일자리 대책’이 더 이상 탁상공론에 머물 사안이 아님을 보여준다. 공장을 짓고, 기업을 유치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낡은 문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일자리 감소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일자리 창출이 점점 어려워진다면 ‘일자리 공유’라는 새로운 길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는 초양극화 시대에 우리 기업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웨이모 방화와 같은 극단적인 충돌과 갈등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2년 8개월 만에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재개됐다. 근로시간 개편이 최대 현안이다. 주 노동시간을 놓고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곧 다가올 ‘일자리 감소 쓰나미’를 생각하면 한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치 앞보다 천리 밖을 내다봐야 한다. 모처럼 머리를 맞댄 노사정이 근로시간이라는 나무만 보지 말고 ‘일자리 패러다임 변화’라는 거대한 숲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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