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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애플’과 헤어질 결심
[발행인 칼럼] ‘애플’과 헤어질 결심
  • 장지영 발행인
  • 승인 2024.03.12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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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퍼스트'서 '탈 애플'로 대전환 시급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한때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왕좌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지난해 실적은 극과 극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영업이익 5조57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에 근접했다. 반면에 LG디스플레이는 2조5102억원의 영업손실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희비는 애플이 갈랐다. LG가 아이폰용 OLED 수율 문제로 공급이 지연되자 삼성이 반사효과를 거둔 게 결정적이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애플 물량 확보가 두 회사 실적을 좌우한다. 이미 아이패드 OLED 공급량을 두고 영업전이 뜨겁다.

한국에서 애플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마디로 ‘애증’이다. 미우면서도 고마운 존재다. 애플이 한국에서 돈만 벌어 갔지 기여한 것이 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겉으로 볼 땐 그렇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다르다.

아이폰은 한국의 부품산업을 떠받치는 한 기둥이다. 삼성그룹 최대 고객이다. 연간 10조원이 넘는 부품을 구매한다. 아이폰 메모리 칩은 거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생산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용 OLED를 공급한 덕에 삼성 전자계열사 가운데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LG그룹 부품사도 마찬가지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기업은 애플 매출이 없으면 주가가 떨어진다. 그 아래로 내려오면 애플 덕에 먹고 사는 장비, 소재 기업도 수두룩하다. 더러는 애플과 거래하는 일본, 중국, 대만의 제조 기업에 장비를 공급하기도 한다. 애플이 망한다는 것은 우리 소부장 생태계의 균열을 의미한다.

그런데 애플이 사면초가다. 아이폰 판매는 부진하고, 미래 사업은 불투명하다. 지난해 시가총액 3조달러를 처음 돌파할 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불과 1년 만에 시장의 평가는 180도 바뀌었다. 바클레이즈·UBS 등 월가 투자은행(IB)은 매도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공매도 놀이터’로 전락하는 굴욕까지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 당국이 반독점 위반 혐의로 18억4000만유로(약 2조66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 폭탄을 부과했다.

애플은 특유의 비밀주의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애플이 지난달 ‘애플카 프로젝트 포기’를 선언했다. 10년간 100억달러(13조원) 이상을 쏟아부은 야심작이었다. 마이크로LED 애플워치 출시 계획도 사실상 백지화됐다. 차세대 전략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다.

시장에선 인공지능(AI) 시대 대응에 늦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비등한다. 이미 시총 1위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내준 데 이어 엔비디아에 2위 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애플 리스크’가 한국 제조업에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했다. 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LG이노텍과 LG디스플레이의 주가가 빠지고 있다. 애플 협력사에 부정적인 리포트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애플 리스크’는 이미 8년 전부터 제기됐다. 고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우리 기업도 수긍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아이폰 질주에 취해 흐지부지됐다. 일부 기업은 오히려 애플에 더 종속됐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 애플이 힘들어도 급격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금성 자산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615억 달러에 달한다. 여차하면 오픈AI와 같은 빅테크를 인수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기업의 ‘애플 리스크’가 기우일 수도 있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애플이 금세 부진을 털어내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아직 놓지 않은 카드다. 애플카 중단을 발표하자 애플 주가는 오히려 반등했다. AI 사업에 집중해 반격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후발주자이지만 시장이 성숙할 때 ‘혁신 아이템’으로 판세를 뒤집어온 저력도 있다. 일각에서는 6월께 열리는 애플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를 주목한다.

그러나 변곡점에 온 것은 확실하다. 모바일 시대가 저물고 AI와 모빌리티 시대가 밝았다. 애플이 고전하는 분야다. 무엇보다 애플카 프로젝트 중단은 우리 제조업계에 뼈아프다. 시들해지는 아이폰 수요를 대체해줄 확실한 아이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애플을 대체할 시장과 고객 다변화가 발등의 불이다. 당장 애플카의 대안부터 찾아야 한다. 이젠 애플과 헤어질 결심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간 ‘애플 퍼스트’에서 ‘탈 애플’로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절박해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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