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린 개구리'가 더 멀리 뛴다
“누군가 두견새를 보내왔다. 그러나 두견새는 울지 않는다.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목을 쳐버려라(오다 노부나가),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라(도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에도시대 말기 지방호족 마쓰라 세이잔이 전국시대 세 영웅의 리더십을 빗대 지은 일본 시조(하이쿠)다. ‘카리스마’ 넘치는 오다는 전국시대 혼란을 제압하고 통일의 초석을 놓았다. 그 뒤를 이은 전략가 도요토미는 특유의 지략으로 통일 대업을 완수했다. 인내의 상징인 도쿠가와는 때를 기다려 끝내 권력을 잡고 265년의 도쿠가와 막부시대를 열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불리는 이들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리더십으로 야망을 실현했다.
울지 않는 두견새처럼 불황이 좀처럼 풀리지 않은 한해였다. 기업의 리더들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동분서주했다. 오다의 쾌도난마(快刀亂麻)와 도구카와의 대기만성(大器晩成)보다 도요토미의 백방천계(百方千計)식 경영이 두드러졌다.
논공행상의 계절이다. 연말 인사를 앞두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발표도 안 된 삼성 전자계열사 임원인사 명단이 벌써 ‘지라시’로 돌기도 했다.
인사하면 ‘성과주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올해 인사 보도자료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할 것이다. 성장과 이윤추구가 목표인 기업으로선 당연한 기준이다. 그래서 ‘성과=승진’이라는 담론이 일종의 신화처럼 굳어 있다.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보통 매출, 영업이익 등과 같은 실적의 숫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업 인사팀에선 일반적으로 개인(조직)의 노력과 실적을 곱하는 방식(실적 X 노력)을 많이 쓴다. 사업 아이템, 시장 상황 등 여러 변수가 실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운 좋게 급성장하는 아이템으로 초호황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벌인 A와 반대 상황의 B를 비교해보자. A는 20%의 노력으로 100의 실적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B는 100% 노력해도 50의 실적을 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A와 B 중 누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까. 100의 실적을 기록한 A가 50의 실적을 보인 B보다 단연 돋보이지만, 노력 값을 곱하면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스테그플레이션’으로 올해 시장환경은 최악이었다. 인사 평가에선 이런 점이 크게 고려될 것이다. 그래서 실적 수치만 놓고 단순하게 임원의 진퇴를 논하는 ‘지라시’는 무의미할 수 있다. 불황 타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내년 이후 턴어라운드와 성장잠재력을 얼마나 잘 다졌는지가 중요한 잣대다.
제조업의 경우 장치산업의 특성상 경영성과가 2~3년 뒤에 반영되곤 한다. 억울하지만 이전 경영진의 오판으로 현재 부메랑을 맞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정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은 저서 ‘초격차’에서 “높은 성과를 낸 사람에겐 돈으로 보상(Pay by Performance)하고, 잠재적 성장역량이 높은 사람에겐 승진으로 보상(Promotion by Potential)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성과와 승진을 기계적으로 연동시켜 매출 증가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승진시킨다. 무조건 승진시켜 보상한다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생기게 된다”고 꼬집었다.
인사가 만사다. 당장의 실적에 현혹되기보다는 미래 성장잠재력을 찬찬히 따져봐야 할 시기다. '움츠린 개구리'가 더 멀리 뛰는 법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자동차전장·ICT부품 분야 전문미디어 디일렉》
저작권자 ©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디일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