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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메모리 거품론’은 없다
[발행인 칼럼] ‘메모리 거품론’은 없다
  • 장지영 발행인
  • 승인 2024.08.06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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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독주' 무너져도 고용량 HBM 수요 지속

‘인공지능(AI) 거품’ 논쟁이 뜨겁다. 미국 경제 침체 전망과 맞물리면서 주요국 증시가 패닉에 빠진 여파다. 2000년대 ‘닷컴 버플 붕괴’가 재연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AI 거품론의 근거는 막대한 투자에도 지금까지 뚜렷한 수익을 낸 AI 서비스가 사실상 없는 데다 신규 비즈니스 모델(BM)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 열기가 빠르게 식을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달 구글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투자수익률(ROI)’ 질문이 쏟아지면서 불을 지폈다. 미국 버클리는 빅테크들이 2026년까지 AI 모델 개발에 연간 약 600억달러(약 83조원)를 투자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그때까지 AI를 통한 수익은 연간 약 200억달러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관했다.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으면 배터리 시장과 흡사한 ‘캐즘’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거품론의 또 다른 갈래는 ‘엔비디아 쇼크’다. 테크 시장 전반을 이끌었던 엔비디아에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고, 애플이 구글 반도체를 사용하면서 시장 지배력에도 균열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야심 차게 준비해온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의 설계 결함 뉴스까지 나왔다. 엔비디아 생태계로 각광받아 온 기업들의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증시 패닉의 트리거가 됐다.

거품론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승자 독식의 원리가 작용하는 AI 시장 특성상 빅테크가 투자 경쟁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컨퍼런스콜에서 “AI 경쟁에서 선두로 나서기 위해 투자하지 않는 것은 훨씬 큰 단점이 될 것”이라며 과잉투자도 불사할 뜻을 내비쳤다. 이를 반영하듯 수요도 꺾이지 않고 있다. 빅테크는 공급부족으로 엔비디아 AI 가속기를 구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내년 치 물량을 이미 완판했다.

AI 열풍이 거품인지, 아닌지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야 분명해질 것이다. 다만 거품(버블)은 실체 없이 막연한 기대감으로 기업가치가 오르는 현상이다. 이런 잣대로 보면 현재 AI 거품 우려가 다소 과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호실적을 기록했다. AI 가속기 투자 열풍에 따른 HBM과 서버용 SSD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하반기 전망은 더 밝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서 사상 최대 영업이익 전망까지 나왔다. 아직 실적 발표를 하지 않은 엔비디아의 실적 컨센서스 역시 높은 편이다. ‘배터리 캐즘’이 전기차 판매 저조라는 펀더멘탈 부실에서 시작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거품론 가운데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엔비디아 리스크’다. 애플뿐만 아니라 구글, 메타 등 빅테크가 일제히 자체 AI칩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투자비만큼 전기료 부담이 크다. 빅테크가 자체 시스템에 최적화된 AI칩을 개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로선 대안이 없어 엔비디아 칩을 쓰지만 자체 칩으로 대체하면 엔비디아의 위상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엔비디아와 긴밀하게 협력해온 기업들로선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메모리 기업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빅테크가 개발한 자체 AI 가속기에도 HBM과 같은 고용량 메모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요자가 늘어나 공급자 우위 시장이 열릴 수 있다. 관건은 AI 데이터센터의 난제로 떠오른 방열과 저전력 문제를 해결한 혁신 제품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 하는 것이다. 빅테크 자체 칩에 최적화된 커스텀 메모리를 적시에 공급하는 노하우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 충격파가 불러온 메모리 슈퍼 사이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알파고 충격파’는 빅테크의 머신러닝 투자 열풍을 불러왔다. 이 여파로 2018년까지 메모리 슈퍼 사이클이 2년 남짓 이어졌다. 챗 GPT발 2차 AI 투자 열풍 역시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AI 거품론은 아직 실체를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메모리의 경우 이제 상승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공산이 크다. ‘AI 거품론’은 있어도 ‘메모리 거품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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