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m 격차' 피말리는 승자독식 레이스 누가 웃을까
“인공지능(AI)이 5년내 인간을 압도한다.”
“미국 칩 업체가 중국 공급망에서 독립하려면 10년은 걸린다.”
요즘 ‘테크판 핵인싸’를 꼽으라면 단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가 된다. AI 시대의 미래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달린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엔비디아의 성장은 눈을 의심케 한다. 지난해 3분기 59억3000만달러이던 매출은 올해 3분기 181억2000만달러로 폭증했다. 1년 만에 무려 3배나 껑충 뛰었다. 역사상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성장한 기업이 있을까. 실적이 뒷받침되니, 그의 발언은 시속 160km의 강속구처럼 묵직하다.
기업마다 인사와 조직개편이 거의 마무리됐다. 이젠 내년 사업계획 확정에 눈길이 쏠린다.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터라 ‘턴어라운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백가쟁명식 전망이 쏟아진다. 하지만 내년에도 AI와 엔비디아의 질주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엔 이견이 없다. 국내 테크기업의 사업계획에도 ‘AI 비즈니스’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생태계 합류 시점이다. AI 가속기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시기와 폭에 따라 D램 실적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퀄 테스트 통과 여부를 놓고 소문이 난무하지만,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디일렉은 최근 삼성전자가 이를 염두에 두고 일본 신카와 본딩장비 16대를 발주한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엔비디아를 뚫는 게 ‘빅 뉴스’라니 격세지감마저 든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주도한 ‘윈텔 동맹’의 위세가 대단했다. 여기에 합류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테크기업의 명운이 갈렸다. 이젠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협력을 빗대어 ‘엔비닉스 동맹’이라 부르고, 삼성이 짝을 지으면 ‘엔성 동맹’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AI가 전기나 통신처럼 인프라(infra)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한다. 초고속 인터넷이 없으면 업무 효율이 반감되듯, AI가 없으면 기업이나 노동자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매달 비싼 통신료를 거부감 없이 지출하듯 AI 서비스 월정액을 꼬박꼬박 내는 세상이 열릴 것이다. 윈텔 동맹이 10년 이상 세계 테크 시장을 주도했듯이 ‘엔비디아 연합군’의 장기 집권도 분명해 보인다. 삼성전자가 하루라도 빨리 엔비디아 동맹에 합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래학자들은 AI 비즈니스가 철저하게 승자독식의 원리로 작동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초고성능 AI를 보유한 소수의 기업과 국가, 심지어 개인이 부를 독점한다. 이 때문에 최고 성능의 AI로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솔루션이든 하드웨어든 독점기업이 세계를 지배할 공산이 크다. 서비스 품질이 거의 균질해 국가마다 여러 기업이 과점한 통신이나 전기산업과 완전히 다른 시장판도가 펼쳐진다.
엔비디아는 이를 감안한 듯 최근 AI 가속기 신제품 발표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내년과 내후년 제품 로드맵까지 공개했다. 인텔, AMD, 퀄컴 등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구글, 아마존, 메타 등까지 경쟁에 가세하자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포석이다. ‘원톱’으로 치고 나가기 위한 스퍼트에 돌입한 셈이다.
메모리 업계도 레이스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HBM3e, HBM4 등 양질의 차세대 메모리를 누가 빨리 개발하는가 하는 싸움이다. 당장 퀄 통과는 시작에 불과하다. 차세대 기술에서 확실한 비교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독점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차세대 HBM은 수율과 생산성 확보, 열관리 등 기술적 난제가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1mm가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삼성전자가 될지, SK하이닉스가 될지, 마이크론이 될지... 엔비디아처럼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룰 주인공이 궁금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자동차전장·ICT부품 분야 전문미디어 디일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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