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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공기로 석유 만들겠다는 현대차
[발행인 칼럼] 공기로 석유 만들겠다는 현대차
  • 장지영 발행인
  • 승인 2024.01.16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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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의 무한도전’에 눈길이 가는 이유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다. 반대로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뉴스를 결정하는 가치 기준으로 흔히 인용되는 사례다. 상식을 뛰어넘는 정보가 뉴스로서 가치가 있다. 지난주 막을 내린 ‘CES 2024’는 거대한 ‘뉴스 발전소’와 같았다.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로봇, 모빌리티 등에서 신기술 정보가 어지럽게 쏟아졌다. 특히 AI가 산업 곳곳에 접목되는 ‘AI everywhere’ 관련 뉴스가 넘쳐났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와우 뉴스’는 보이지 않았다. 홍수처럼 쏟아졌지만, 뇌리에 남을 만큼 신기한 건 없었다. 취재 기자로 CES 현장을 직접 누볐다면 감흥이 달랐을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현업 전문가라면 맥락을 더 음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디어로 접한 뉴스는 대부분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눈길을 사로잡은 뉴스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현대차그룹의 수소시장 재도전’ 기사였다. 처음엔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기대를 모은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는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가 아닌가. 지난해 국내 수소차 판매량은 고작 4608대에 불과했고, 현대차도 신차 발표를 미루고 관련 조직을 축소했던 터이다. 사실상 전기차에 밀려 수소차는 끝난 분위기였다. 그런데 다시 수소 사업이라니, 그것도 수소차에 그치지 않고 수소 밸류체인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니, 궁금증이 커졌다.
당연히 ‘왜?’ ‘갑자기?’라는 질문이 따랐다. 정의선 회장과 장재훈 현대차 사장의 답변이 압권이었다. 정 회장은 왜 수소인가라는 기자들의 물음에 “수소는 저희 대(代)가 아니고 저희 후대(後代)를 위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장 사장은 “한국에는 석유가 안 나지만 기술만 있으면 수소를 (석유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참 멋진 대답이었다. 당장의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기업가라기보다 인류를 구원할 과학자가 했을 법한 이 대답에 한껏 매료돼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중후장대한 비전이 실현된다면 기후와 에너지 위기라는 인류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기를 석유로 만든다’는 이 원대한 꿈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 정 회장이 다음 세대를 위한 도전이라고 언급했지만 3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며 그 긴 세월을 버텨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반론에 장 사장은 “수소 (대중화가) 어렵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해야 하고, 안 하면 뺏길 수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사명감을 갖고 꾸준하고 과감하게 진행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험난한 여정이지만, 되돌아보면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19세기 말 프리츠 하버와 카롤 보슈는 ‘공기를 빵으로 만든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당시 산업화로 인류는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에 칠레산 초석과 같은 천연비료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농지가 화폐화하면서 인류 멸망론을 설파한 멜서스의 ‘인구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과학계는 인공비료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실패가 거듭되는 가운데 독일 과학자 하버와 보슈가 해답을 찾아냈다.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추출하는 '공기의 연금술'을 발명했다. 농업혁명이 일어났고, 식량난도 순식간에 해결됐다. 질소 암모니아 추출 공장을 처음 구축한 독일 바스프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며 세계 최고 화학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오늘날 기후위기론은 19세기 식량고갈론과 닮아있다. 해법도 비슷하다. 공기를 빵으로, 공기로 석유로 바꾸는 ‘공기의 연금술’이다. 공기 중 질소를 정복한 인류는 이제 수소를 정복해야 한다. 수소의 효용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수소는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한 원소다.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물에도 수소가 들어 있다. 수소를 에너지로 쓰는 소수차는 탄소제로를 실현할 궁극의 친환경차다. 석탄 용광로를 수소환원 제철로 바꾸면 꿈같은 탄소중립도 달성할 수 있다. 바스프가 ‘하버-보슈 시스템’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했듯이 수소차나 수소환원 제철을 상용화하는 기업은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라설 것이다. 독일 화학기업 머크는 350년의 최장수 기업이다. ‘천사약국’으로 시작한 이 기업은 현재 디스플레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분야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 350년 숱한 위기에도 살아남은 비결에 대해 머크 경영진은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반면에 지난달 150년 역사의 일본 전자기업 도시바가 일본 증시에서 상장폐지 됐다. 세기를 뛰어넘어 영속해온 기업도 끊임없이 미래 세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AI, 로봇, 메타버스 등 빛의 속도로 바뀌는 기술 대변혁기엔 단거리 경주마가 되기 십상이다. 기업들이 좌우 눈가리개를 달고 1~2년 후 짧은 미래의 앞만 보고 질주한다. 이런 경마장과 같은 CES에서 현대차가 내놓은 수소 전략은 생경하지만 울림이 컸다. 단기 승부에 급급했던 기업이나 경영진이라면 한번 되새겨볼 뉴스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해 도전한다”는 정 회장의 발언이 필자에겐 올해 CES 뉴스 가운데 ‘원픽’이자 ‘톱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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