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희망퇴직으로 뼈아픈 과거...핵심 개발자 대거 이탈 경험
우선적으로 비개발직군 대상...개발직군은 실적에 따라
엔씨소프트가 실적 부진을 이유로 비개발직군의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인력감축을 추진하고 있어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노조가 인력감축에 반발하면서 어떤 형태로, 얼마의 규모로 진행될 지가 관심사다.
앞서 엔씨소프트는 올해 초 박병무 사외이사를 공동대표로 선임하며 경영과 개발을 분리하고 공격적인 해외진출과 M&A, 신작 등 실적개선 방침과 함께 경영효율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연간 실적을 발표한 지난 2월 회사 내부에 조직개편·구조조정 등이 이슈로 떠올랐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오는 10일로 예정된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인력감축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감축 형태는 '희망퇴직'이 아닌 '권고사직' 형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올 1분기 실적은 연결기준으로 매출액 4000억~4041억원, 영업이익 132억~142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4분기에 실시된 '리니지W'와 '리니지2M'의 콘텐츠 업데이트 효과가 사라지면서 이번 분기의 실적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2023년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제기된 1500명에 이르는 비개발직군에 대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엔씨소프트 내부에서는 일부 비개발직군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 통보가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소프트가 인력감축을 위해 규모있는 권고사직을 시행하는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이와 관련, 통상 기업들이 인력감축을 할 때 시행하는 '희망퇴직'이 아닌 '권고사직' 방식을 택한 것도 관심을 끈다. 업계에선 엔씨소프트가 과거 희망퇴직을 시행했다가 핵심 인력까지 유출됐던 트라우마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인력감축을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12년 6월 7일 넥슨 일본법인은 엔씨소프트의 설립자인 김택진 대표로부터 회사 총주식의 14.7%에 해당하는 321만8091주를 주당 25만원에 취득, 엔씨소프트의 1대주주로 올라섰다. 인수금액은 약 8045억원이다. 당시 업계 1위와 2위가 손을 잡는 '지각변동'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1대주주가 넥슨으로 바뀐 직후, 엔씨소프트는 곧바로 인력 감축에 나섰다. 이때 희망퇴직으로 1200명에 달하는 엔씨소프트의 인력이 이탈했다. 당시 엔씨소프트의 전체 인원이 대략 3500여 명이었으니 약 35%가 넘는 직원이 한꺼번에 회사를 나간 셈이다.
그런데 당초 엔씨소프트는 200여명 정도의 비개발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개발직군 인원이 대거 희망퇴직을 신청하면서 무려 천명이 훌쩍 넘는 직원이 엔씨소프트를 그만뒀다. 1200명 가운데 비개발진 400명, 개발진 800명이었다. 이 여파로 엔씨소프트는 진행 중인 개발 프로젝트에 큰 차질을 빚었고 이후 엔씨소프트는 개발직군에게 업계 최고대우와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등 이직율과 퇴사율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됐다. 게다가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조합은 시너지 효과가 아닌 경영권 분쟁으로 번져 몸살을 겪다가, 3년 후인 2015년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전부 매각하면서 불편한 동거가 종료됐다.
엔씨소프트가 이번에 희망퇴직이 아닌 권고사직을 추진하려는 것도 이러한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쓸려 핵심 개발자가 이탈하면 추진 중인 해당 프로젝트의 향방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또 퇴사한 개발자들은 경쟁업체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다수이므로 자사의 경쟁력은 낮아지면서 동시에 타사의 프로젝트에 힘이 붙는 상황이 벌어진다.
엔씨소프트 출신의 한 개발자는 "과거에 실시했던 희망퇴직은 (퇴직수당 등이) 업계 최고로 진행하는 바람에 회사가 고려하지 않았던 개발자들이 대거 신청하면서 경영효율화가 아니라 오히려 좋지 못한 영향을 받았다"며 "이번 권고사직 방식은 엔씨소프트가 개발직군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개발자를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발자가 이탈하지 않는 선에서 인력감축을 고민할 듯"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비개발직군에는 운영·서비스·마케팅 등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직과 인원이 포함돼 있고 자체 서비스를 실시하는 게임회사에서 필수 인력"이라며 "이를 잘 알고 있는 엔씨소프트 입장에서는 비개발직군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인력감축이 쉬운 결정은 아니였을 것이나 실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개발직군으로 불이 옮겨 붙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디일렉=김성진 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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