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업부 부진, 실적에 영향…HBM 이렇다할 성과 없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이 8일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 뉴스룸에 이같은 글을 올렸다. 경영진이 실적부진에 대해 사과의 메시지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주가 하락과 기술 경쟁력 우려 등 삼성전자를 둘러싸고 전사적인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이 같은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위기 극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 부회장은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철저한 미래 준비 △조직문화·업무방식 재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 완벽한 품질 경쟁력만이 삼성전자가 재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단기적인 해결책 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술과 품질은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고 덧붙였다.
또 "두려움 없이 미래를 개척하고, 한번 세운 목표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달성해내고야 마는 우리 고유의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며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전했다.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 재건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해 개선하겠다"며 "특히, 투자자 여러분과는 기회가 될 때마다 활발하게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삼성전자는 연결기준으로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의 2024년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이번 잠정 실적은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취합한 컨센서스인 매출 80조9003억원, 영업이익 10조7717억원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기대치에 못미친 성적표는 실적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사업부의 부진이 영향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 역시 "DS 사업부는 인센티브 충당 등 일회성 비용 영향으로 전 분기 대비 실적이 하락했다"고 전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5조원 가량의 실적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AI의 핵심 반도체로 꼽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선두 자리를 SK하이닉스에게 내준 영향으로 분석된다.
HBM은 일반 D램보다 최대 10배 이상 가격이 높아 수익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5세대인 HBM3E를 공급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5세대 HBM(HBM3E)은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 사업화가 지연됐다"며 "메모리 사업은 서버/HBM 수요 견조에도 불구하고, 일부 모바일 고객사의 재고 조정과 중국 메모리 업체의 레거시 제품 공급 증가가 영향을 준 가운데 일회성 비용 및 환율 하락으로 실적이 하락했다" 고 설명했다.
다만 디바이스경험(DX, 세트) 사업부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판매 호조, 삼성디스플레이(SDC)는 주요 고객사 신제품 출시 효과로 일부 개선됐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5월 부임한 전 부회장은 불필요한 행사를 줄이고 반도체의 '기본'인 기술력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12월 중 개최 예정이던 '반도체 50주년' 행사를 최근 전면 보류하고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