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OSAT 업체 테스나 인수 이어 설계분야 투자 확대
후공정 및 첨단 시스템반도체 분야 시너지 효과 창출 기대
두산그룹이 시스템반도체 디자인하우스인 세미파이브에 지분 투자를 한다. 지난해 후공정 업체 테스나 인수 이후 반도체 사업 관련 두번째 투자 행보다. 이번 투자는 두산이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반도체 사업, 특히 후공정 및 시스템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분석된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세미파이브가 진행 중인 시리즈C 투자에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세미파이브의 시리즈C 투자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이다. 당초 자금조달 목표는 600억원 정도였으나 최종적으로 7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자에는 LB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등이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한다. 두산은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두산이 얼마를 투자하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백억원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두산은 FI가 아닌 SI 자격으로 참여해 세미파이브와 협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미파이브 측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두산의 투자를 받아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세미파이브 투자는 지난해부터 두산이 추진하려는 '반도체 사업 진출'의 일환이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두산이 가장 먼저 반도체 후공정 사업에 진출하기는 했으나, 패키징·테스트 외에도 시스템반도체 관련 사업을 전반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세미파이브에 대한 투자도 최첨단 시스템반도체에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세미파이브는 2018년 조명현 대표와 미국 반도체 스타트업 사이파이브(SiFive) 창립멤버들이 만든 디자인하우스다. 삼성전자의 DSP(디자인솔루션파트너) 중 한 곳이다.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이에서 칩 설계와 공정 최적화 등을 돕는 역할을 한다.
세미파이브는 업력은 짧지만 세솔반도체, 다심, 하나텍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사세를 빠르게 키워왔다. 현재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등 첨단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위한 플랫폼을 회사의 핵심 기술력으로 삼고 있다. 올해에는 국내 고객사의 14nm 공정 기반의 AI 반도체 생산을 시작했다.
두산은 반도체를 회사의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인 투자를 계획해왔다. 지난해에는 4600억원을 투자해 국내 OSAT(반도체외주패키징테스트) 업체 테스나(현 두산테스나)를 인수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을 고객사로 둔 테스나는 AP, CIS, RF 칩 등 주로 시스템반도체 테스트 사업을 하는 회사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테스나 인수와 관련해 "반도체는 두산의 새로운 승부처로서 기존 핵심 사업인 에너지, 기계 분야와 더불어 또 하나의 성장 축이 될 것"이라며 반도체 사업에 향후 5년간 1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최근엔 박정원 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이 이달 초 열린 'MWC 2023' 행사에서 "반도체 제조를 위한 주변 생태계에 우리(두산)가 들어갈 만한 사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가적인 M&A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세미파이브 투자로 당장 두산이 얻을 실익은 두산테스나가 하고 있는 후공정 쪽 고객사 풀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이와 관련, 반도체 업계에서는 전공정의 반도체 회로 선폭 미세화의 한계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후공정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추세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와 패키징 업체들은 후공정에 전공정 기술을 결합하는 최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주목받는 3D 적층, FOWLP(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 기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디자인하우스 업계에서도 패키징 기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칩 설계가 복잡해지면서, 고객사의 까다로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첨단 패키징 기술을 함께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두산은 이번 세미파이브 투자를 통해 두산테스나는 협업을 도모할 수 있는 분야가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세미파이브 입장에서는 두산의 투자로 보다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세미파이브의 매출은 2019년 10억원에서 2020년 19억원, 2021년 96억원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동시에 영업손실이 2019년 약 15억원, 2020년 86억원, 2021년 210억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첨단 시스템반도체와 관련한 연구개발, 인력 확보, 인수 등에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간 탓이다. 활발한 투자 유치에도 재무구조가 지속 악화되고 있는 만큼, 향후 두산으로부터 회사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디일렉=장경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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