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형 받은 기업 중 57% 경영활동 중단
법 제정 후 산재사고 사망률 감소폭 크지 않아
영국 법인과실치사법 도입 이후 이 법에 제재를 받은 약 57% 기업 경영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을 모델로 한 것이다.
국내 법안은 대표이사 등 사업주에게도 형사 처벌을 하기 때문에 수위가 더 높다. 산업현장에서 사망 등 중대사고 발생시 경영 책임자에게 최대 5년 이상 징역형을 내리고 법인에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청구한다.
지난 2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유튜브를 통해 영국의 산재예방정책, 법인과실치사법 등의 적용 시사점을 소개했다. 닉 릭비 영국 보건안전청 수석감독관과 영국 법인과실치사법 전문가인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학 로스쿨 교수가 영국 사례를 설명했다. 빅토리아 교수는 '법인과실치사법 제정 10년 평가'라는 주제로 논문도 썼다. 사회는 전규찬 영국러프버러대학교 인간시스템공학 교수가 맡았다.
전 교수는 2007년 영국 법인과실치사법 제정 배경을 물었다. 빅토리아 교수는 "영국에서 수많은 인명손실을 가져온 열차충돌, 여객선 침몰과 같은 교통 참사들이 연달아 발생했지만 관련 법인이나 기업에 대한 과실치사 기소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면서 "심각한 위반행위는 보건안전법에 따른 기소 외 추가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실제 입법이 이뤄지기까지는 1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07년에 제정돼 2008년에 발효됐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법인과실치사법을 통해 기업이 안전준수 위반 등을 위반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법인에 벌금을 부과한다. 현재 정부에서 입법 추진중인 중대재해법은 법인 벌금 부과는 물론 기업 경영자도 형사 처벌한다. 빅토리아 교수는 "벌금형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기업 경영활동에 큰 충격을 받는다"고 얘기했다.
빅토리아 교수는 "이 법에 의한 첫번째 유죄판결은 2011년에 나왔다"면서 "Cotswold Geotechnical Holdings라는 중소기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첫번째 회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사망사건으로 인해 연매출 3억원 기업에게 약 5억8400만원 벌금이 부과됐다"면서 "대부분 기소는 중소기업이었고, 지금까지 28건의 유죄판결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죄판결 받은 기업 중 절반 이상(57%)이 파산하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중소기업 기소 사례가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빅토리아 교수는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이윤 폭이 작기 떄문에 안전장비 구비, 훈련 실시와 같은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중소기업일수록 사망사고 확률도 높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2007년 법인과실치사법 제정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빅토리아 교수는 "이 법의 사고 억제효과에 의문을 갖고 있다"면서 "실제로 사고 억제의 효과가 있다고 해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꾸준히 감소하던 산재사망률은 최근 들어 정체 상태에 진입했으며 이법이 도입된 이후 사망률 감소폭도 그리 크지 않다"고도 했다. 현재 감소 추세의 이유도 이 법 도입으로 인한 영향이라기 보단 장기적 산재감소 추세에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영국은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을 고민중이다. 닉 수석감독관은 "영국 보건안전청의 모든 업무는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면서 "위반자를 기소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각 기업이 효과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는지 살펴보는 걸 우선한다"고 말했다. "향후 10~15년후의 미래 산업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예측하기 힘든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해 사고를 예방하려 노력한다"고도 했다.
저작권자 ©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디일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