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비상체제 전환…차기 대표 선출 원점으로
공정성·투명성 명분 대통령·여당 인사 개입 노골화
신임 CEO, 연임 추진시 다음 정권과 갈등 전망
결국 KT가 백기를 들었다. 구현모 대표이사가 28일 임기 사흘을 남겨두고 사임했다. 차기 대표로 내정했던 윤경림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은 구현모 대표보다 하루 앞선 지난 27일 후보직과 사내이사 직에서 사퇴했다. 야당 쪽 사람으로 분류된 유희열 사외이사와 김대유 사외이사는 구 대표와 함께 물러났다.
KT는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을 대표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비상경영위원회를 구성했다. KT는 비상경영위원회 산하에 뉴거버넌스구축태스크포스(TF)를 두기로 했다. TF가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도출하면 이사회를 새로 꾸리기로 했다. 새로 출범한 이사회가 새 대표 선출을 주도한다. KT는 오는 8월까지 이 과정을 마칠 계획이다.
KT는 지난 2002년 8월 민영화했다.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다. KT 최고경영자(CEO) 임기는 3년이다. 연임 제한은 없다. 민영화 이후 ▲이용경 ▲남중수 ▲이석채 ▲황창규 ▲구현모 5명의 최고경영자(CEO)가 KT를 이끌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통령이 바뀌면 입지가 흔들렸다는 데 있다. 연임을 시도한 모든 이가 검찰 수사를 받았다. 칼날을 피해 연임과 임기 만료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은 황창규 전 대표가 유일하다.
이용경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겪었다. 당시 KT 자회사인 KTF 대표를 거쳐 민영화 첫 KT 대표가 됐다. 2002년 8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재직했다. 연임 시도는 하지 않았다.
남중수 전 대표는 2005년 8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재임했다.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이다. 그는 내부 승진을 통해 KT 대표에 올랐다. 이 전 대표와 차이는 민영화 이후 첫 연임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2008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을 승인했다. 그 해는 이 전 대통령 취임 1년차였다. 2008년 11월 검찰이 남 전 대표를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 직후 남 전 대표는 KT를 떠났다.
이석채 전 대표는 2009년 1월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KT 대표 자리는 새 정권 창출 논공행상 대상’이라는 논란의 출발점이다. 2012년 3월 연임했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했다. 2013년 10월 검찰은 이 전 대표를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를 개시했다. 2013년 12월 사직했다. 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KT 대표는 대통령과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 전 대표를 대신한 사람은 황창규 전 대표다. 2014년 1월 대표에 취임했다. 그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이지만 이 전 대표처럼 낙하산 꼬리표가 붙었다. 박 전 대통령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황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도 불구 2017년 3월 2번째 임기에 들어갔다. 황 전 대표가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는 정치권과 업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2번째 임기 내내 검찰 수사에 시달렸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와 KT 임직원의 국회의원 불법 후원금 전달 배후라는 의혹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구 전 대표는 지난 2020년 3월 11년 만에 KT 내부 승진으로 CEO에 올랐다. 그 역시 연임을 추진했다. 디지털 플랫폼 회사 전환을 위한 경영 연속성 확보를 명분으로 제시했다. 재임기간 실적 확대와 주가 상승 등의 성과 등으로 외국인주주 및 소액주주 등의 지지를 받았다. 2022년 12월 이사회는 구 전 대표를 차기 대표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번엔 내부 승진이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국민연금이 총대를 맸다. ‘셀프 연임’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월 이강철 사외이사가 사표를 냈다. 그는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다. 야당 인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전했다. 1월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구성은 공정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KT 포스코 등을 정조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KT는 2월 KT 신임 대표 선출을 공개모집으로 재추진키로 했다. 구 전 대표도 응했지만 최종 후보 발표 전 사퇴했다.
2월28일 KT는 최종 대표 후보 4인을 공개했다. 윤 사장을 비롯 ▲임헌문 전 KT 사장 ▲박윤영 전 KT 사장 ▲신수정 엔터프라이즈부문장(사장)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2일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최종 후보 4인이 KT전현직 임원인 것은 그들의 이익카르텔을 증명한다”라고 비난했다. 6일 벤자민 홍 사외이사가 사임했다. 홍 사외이사는 라이나생명보험 이사회 의장이다.
7일 KT는 윤 사장을 대표 후보로 발표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이권 카르텔 세력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같은 날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구 전 대표와 윤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8일 KT는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상임경제특보를 맡았던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신임 사외이사로 추전했다. 9일 윤 대통령의 고등학교 선배인 윤정식 전 OBS 경인TV 대표를 KT스카이라이프 대표로 내정한 것이 알려졌다. 두 사람은 각각 10일과 11일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임 고문은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공시까지 했던만큼 이례적인 일로 읽혔다. 그만큼 KT의 선택지도 좁아졌다.
KT 정관은 사내이사 3인 사외이사 8인 총 11명의 이사를 둘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재 KT 이사회는 사내이사 0명 사외이사 4명이 남은 상태다. ▲강충구 고려대학교 교수 ▲여은정 중앙대학교 교수 ▲표현명 전 KT 사장 ▲김용헌 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다. 이들 중 ▲강충구 고려대학교 교수 ▲여은정 중앙대학교 교수 ▲표현명 전 KT 사장은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 예정이다. 안건 통과는 불확실하다. 의결권 자문기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도 이들의 재선임 안건에 반대를 권고한 상태다. 통과해도 이들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에 따라 차기 대표를 포함 KT 이사회 공석은 최대 10명, 최소 7명이다.
박 대표 대행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넘어선 지배구조로 개선하고 국내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KT 이해관계자 중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곳은 국민연금이다. 개선책보다는 빈 자리를 채울 사람이 누구인지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새 CEO가 누가 되든 그가 연임을 할 경우 다음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장기 전략 추진이 쉽지 않아 보인다. KT 구성원들의 지지도, 주주의 동의도, 고객 만족도도, 경영 성과도 상관없이 차기 대표 내정자의 미래가 어느정도 점쳐진다. ‘독이 든 성배’를 마실 자는 누구일까.
디일렉=윤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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