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신규 사업자 전국망 구축 현실성 없어”
정부의 통신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용 28GHz 주파수와 제4 이동통신에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정부는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와 국내 통신 장비 생태계 진흥을 위해 28GHz 기반 새로운 이동통신사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경쟁 촉진을 위해서는 알뜰폰(MVNO, 이동전화재판매) 육성이,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는 중대역 주파수 통신사 추가 공급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 28GHz 주파수 할당 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12일 과기정통부는 SK텔레콤에 28GHz 주파수 할당 취소 처분을 사전 통지했다. 이날 청문 절차를 거친 후 이달 말 최종 처분을 내린다. SK텔레콤의 태도 변화가 크지 않아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28GHz는 4세대(4G)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른 5G를 구현할 수 있는 주파수로 기대를 모았다. 2018년 경매를 통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에 각각 800MHz 폭을 할당했다. 경과는 예상과 달랐다. 주파수는 고주파일수록 직진성이 강하고 투과성이 약하다. 28GHz도 마찬가지다. 기존 방식으로 기지국 서비스 범위(커버리지)를 구축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품질 확보도 어려웠다. KT와 LG유플러스는 작년 12월 28GHz 주파수를 내놨다. SK텔레콤은 조건부로 기한을 벌었지만 같은 KT LG유플러스와 같은 판단을 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18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실패라고 이야기하기는 무리다”라며 “활용할 수 있는 업체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6월 ‘28GHz 신규 사업자 할당 공고’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자가 나오면 중대역 주파수 우선 공급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정부 정책이 ‘그림은 좋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고주파 대역은 세계적으로 확산에 난항을 겪고 있다. 통신칩 업체와 장비 업체가 5G 상용화 전후로 여러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현실화하지 못했다. 28GHz를 개인 대상 사업(B2C)으로 처음 상용화한 미국도 주력 주파수로 쓰고 있지 않다. 일본은 기업 대상 사업(B2B)용으로 이용 중이다. 기술 발전과 비용 하락 속도가 지연된 탓이다.
국제이동통신표준화기구(3GPP)는 2025년 상용화 목표인 5.5세대(5G) 이동통신 ‘5G-어드밴스드’ 기대값을 낮췄다. 5G-어드밴스드 첫 표준인 ‘릴리즈18’ 최대 속도를 10Gbps로 설정했다. 5G 초반 20배 빠른 5G(최대 20Gbps) 절반 수준이다. 고주파 기지국은 이전처럼 일반 대중을 겨냥한 원형 커버리지 구축이 쉽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 빔포밍 등 타깃 커버리지 기술 고도화로 방향을 틀었다.
통신사 관계자는 “사실상 B2C로 28GHz를 이용하는 국내 서비스는 어렵다”라며 “빌딩과 아파트가 많은 도심과 산악 지형이 많은 외곽 환경 등 현재 기술로는 고주파를 활용한 이동통신 서비스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전망도 밝지 않다. 수익성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기간통신사업자가 되려면 수조원을 들여 자체 통신망 등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투자비를 회수할 사업 모델이 제한적이다. 1990년대 후반 개인휴대통신(PCS) 상용화를 계기로 열린 이동통신사 춘추전국시대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시장은 포화다. 마케팅 비용과 경쟁력 있는 요금제까지 필요하다. 정부의 지속적 통신비 인하 압박도 부담이다.
3.7GHz 등 중대역 주파수를 주더라도 시장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파수의 활용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해당 사업자에게 할당한 기한만큼 다른 사업자는 이 주파수를 이용하지 못해서다. 투자가 늦어지는 만큼 국내 통신장비 생태계는 손해다.
이미 5G 투자는 둔화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올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투자 규모를 작년 수준 또는 작년 수준에 못 미칠 것으로 예견했다. 1분기 투자액이 전년동기대비 오른 곳은 LG유플러스뿐이다. LG유플러스는 ‘3.5GHz 주파수 20MHz폭 추가 할당에 따른 투자’를 증가 요인으로 설명했다.
신규 사업자가 신규 전국망을 깐다면 최고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 통신사에 추가 주파수를 조기 할당하는 편이 국내 산업 생태계에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은 이유다.
국내 통신장비 업체 관계자는 “롱텀에볼루션(LTE)의 경우에도 통신사가 전국망 구축 이후에도 추가 주파수를 받아 주파수묶음기술(CA) 투자를 한 것이 생태계 지탱에 도움이 됐다”라며 “시장과 업계 현실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디일렉=윤상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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