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그룹 내 종합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회사 원익IPS가 식각 장비 업체 에이피티씨티 주식을 장내에서 은밀하게, 꾸준히,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원익IPS가 에이피티씨를 적대적으로 인수합병(M&A)하기 위해 장내 지분 매입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원익IPS는 복수 증권사 창구를 통해 에이피티씨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매수세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익IPS가 사들인 에이피티씨 총 주식 수는 명확하게 알려지진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매수세가 계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조만간 공시 의무(5% 이상)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 설명이다. 다만 신탁 등의 방법을 활용하면 5% 이상 지분을 취득하더라도 원익IPS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원익IPS가 에이피티씨 주식을 장내 매수하는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원익IPS를 포함한 원익 그룹 계열사가 타사 주식을 장내 매수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에이피티씨 주변 상황을 고려하면 적대적 M&A를 위한 물밑 작업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에이피티씨는 전 대표 김남헌씨가 제기한 여러 소송으로 '경영권 분쟁'이 있는 기업으로 분류된 상태다. 김씨 측은 에이피티씨를 상대로 신주 발행 무효 소송,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 등을 걸어뒀다. 김씨는 지난 해 하반기 삼성증권과 주식매각자문 계약도 맺었다. 본인이 소유한 지분 전체를 매각하기 위한 계약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선 원익IPS가 사전에 김씨와 거래 계약을 맺었고, 그 후속 작업으로 '장내 매수' 방법을 택했다면 추후 에이피티씨는 첨예한 경영권 분쟁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에이피티씨 전 대표인 김남헌씨와 그의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전체 지분율은 13.4%에 이른다. 현재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최우형 대표 지분율은 9%를 소폭 웃도는 수준이지만, 내부 임직원을 포함해 다수 대형 주주가 가진 주식이 최 대표 우호 지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증착 장비가 주력인 원익IPS는 과거부터 수 차례 반도체 식각 장비를 상용화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에이피티씨는 SK하이닉스가 주 거래처다. 매출 대부분이 SK하이닉스로부터 나온다. 특히 이 회사 메탈 식각 장비는 SK하이닉스 내 90%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원익 그룹은 전반으로 삼성전자와 거래 관계가 공고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메탈 식각 장비를 90%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에 의존한다. 삼성은 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장비사에 개발을 의뢰하기도 했으나 상용화는 요원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원익이 식각 장비 사업을 갖추면 보다 강력한 장비사로 거듭날 수 있다. 원익IPS는 이와 관련해 1여년 전 삼성전자에서 식각 공정을 총괄했던 안태혁씨를 반도체사업총괄 사장으로 선임한 바 있다.
본지는 원익IPS 입장을 듣기 위해 이 회사 이현덕 대표에 문자와 통화 등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에이피티씨 관계자는 "개별 거래원의 자사 주식 매매 동향은 세세히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