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삼성전자 외 프리미엄폰 고객사 필요
中 제조사, 브랜드 가치 향상·커플링 강화 美 제재 회피
제조사·운영체제(OS) 업계에 이어 칩셋 업계도 생태계 구축 전략을 본격화한다. 퀄컴이 ‘스냅드래곤 심리스’를 시작했다. 퀄컴 칩셋을 장착한 기기는 제조사·OS 관계없이 연동할 수 있게 했다. 생태계 전략은 초기 비용은 크지만 성공하면 잠금(Lock-in, 락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애플이 증명했다. 퀄컴의 전략이 고객사 이탈을 막고 거시 경제 위험을 완화하는 묘수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7일 ▲샤오미 ▲오포 ▲아너 ▲레노버-모토로라 ▲에이수스는 연내 퀄컴 ‘스냅드래곤8 3세대’를 내장한 스마트폰을 출시했거나 출시할 예정이다. 스냅드래곤8 3세대는 퀄컴의 최신 프리미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다. 처음으로 스냅드래곤 심리스를 내장했다.
심리스는 퀄컴의 교차 플랫폼이다. 스냅드래곤 칩셋을 장착한 기기는 제조사·OS가 달라도 통합 사용 경험을 지원한다. ▲주변기기 연동 ▲파일 공유 등을 제공한다.
퀄컴은 심리스를 8 3세대와 ‘스냅드래곤 X엘리트’에 탑재했다. X엘리트는 PC용 시스템온칩(SoC)이다. X엘리트 PC는 2024년 중반 출시한다. 심리스는 향후 ▲착용형(웨어러블) 기기 ▲음향기기 ▲혼합현실(XR) 기기 ▲자동차용 칩셋 등으로 확대 예정이다.
제조사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도 협력한다. MS는 퀄컴의 PC 시장 안착을 돕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OS 차원 연결 등을 강화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스냅드래곤 심리스는 제조사·기기·OS 장벽을 허물었다”라며 “퀄컴은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기술을 통합 구현해 더욱 흥미로운 플랫폼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부품 제조사가 통합 플랫폼 생태계 구성을 시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부품 제조사의 통합 생태계는 ‘인텔 인사이드’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인텔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착한 PC 생태계다. 제조사는 달라도 인텔과 공동 마케팅을 한다. 심리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심리스는 그동안 제조사가 추진한 생태계와 유사하다. 삼성전자 ‘스마트싱스’처럼 기기와 OS 구분을 없앴다. 스마트싱스는 삼성전자 기기끼리 심리스는 퀄컴 부품 장착 기기끼리라는 점이 차이점이다.
중국 제조사가 적극적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심리스 초반 생태계 합류를 선언한 5개사 중 4개사는 중국 제조사다.
윌리엄 루 샤오미 사장은 “2024년 첫 전기차(EV)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가정에서 차량까지 이어지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라고 전했다.
조지 자우 아너 최고경영자(CEO)는 “심리스 기반 아너 기기를 연동하는 플랫폼 ‘매직링’을 강화할 것”이라며 “스마트폰에 이어 PC 시장 공략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퀄컴과 중국 제조사의 밀착은 양측의 이해가 맞았기 때문이다. 퀄컴은 삼성전자를 대체할 고객사가 필요하다. 중국 제조사는 프리미엄 시장 진출과 미국·중국 갈등 관리가 상수다.
지난 3분기 퀄컴 매출액의 60%가 모바일에서 나왔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프리미엄 스마트폰(600달러 이상) 시장 점유율은 ▲애플 75% ▲삼성전자 16%다. 나머지 업체 점유율은 5%도 안 된다. 양사를 제외한 최대 점유율 기업은 샤오미. 점유율은 3%다.
애플은 자체 AP를 쓴다. 삼성전자는 퀄컴과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엑시노스 시리즈’를 병행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2년 퀄컴 비중을 확장했다. 하지만 내년부터 엑시노스 비중을 늘릴 전망이다. 퀄컴이 차지할 수 있는 프리미엄폰 시장이 연간 최대 25%에서 1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셈이다. 퀄컴의 생존을 위해선 중국 제조사의 성장이 절실하다.
또 모바일 경쟁력을 지켜야 PC·자동차 등으로 넘어가기가 수월하다. 중국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작년 팔린 스마트폰 4대 중 1대는 중국에서 샀다. 심리스 참여 4개사 작년 중국 스마트폰 점유율은 50%를 상회한다. 규모의 경제를 조성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중국 제조사 입장에서는 퀄컴 AP 활용은 프리미엄폰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이다. 중국 제조사는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가 높지 않다.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버도 마찬가지다. 중국 내에서도 애플과 경쟁이 힘에 겨운 상태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양극화가 심화했다. 프리미엄폰은 ‘수익’ 중저가폰은 ‘규모’ 추세를 강화했다.
아울러 ‘제2의 화웨이’를 피할 수 있다. 화웨이는 세계 스마트폰 선두 목전에서 미국 정부의 제재로 추락했다. 화웨이는 미국 기업과 동조화(커플링)가 깊지 않았다. SW 외에는 한국과 중국 기업과 협력했다. AP도 자체 AP를 썼다. 화웨이 몰락에 따른 미국 기업 피해는 크지 않았다.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타깃이 된 이유는 중국 정부의 부당 지원과 불법 활동 협력 의혹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따라 다른 제조사로 화살이 돌아갈 수 있는 혐의다. 퀄컴과 커플링은 미국 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퀄컴이 편을 들어줄 수도 있다. 화웨이도 미국 제재 이후 동남아시아 유통사와 협력 등 해당 지역 경제 밀착을 위험 회피 수단으로 쓰고 있다.
한편 퀄컴과 중국 제조사의 연대는 삼성전자에게 불리한 소식이다. 삼성전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애플처럼 독자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지 기기 제조사 중 한 곳으로 남을지 갈림길이다. 삼성전자는 모바일·TV·가전을 아우르는 생태계를 10여년째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의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 달성 여부도 달렸다. 엑시노스의 성공은 시스템반도체 사업뿐 아니라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사업까지 영향을 미친다.
디일렉=윤상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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