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자산 30% 일진머티리얼즈 매각
【편집자 주】 '딜 인사이드(Deal Inside)'는 디일렉의 투자 자회사 레드일렉이 소개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전자부품 분야 기업들의 투자 관련 심층 리포트입니다. 딜 인사이드의 '인'은 사람 인(人)을 뜻합니다. IPO(기업공개), M&A(인수·합병) 등 딜(deal)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일주일에 한번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일진그룹은 최근 연이어 일부 사업 매각 의사를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비쳤다. 시장에 나온 매각 대상 계열사는 일진머티리얼즈와 일진디스플레이 2곳이다. 매각 관점에서 보면, 일진머티리얼즈에 대한 관심은 ‘얼마에 사갈까’이며, 일진디스플레이는 ‘누가 사갈까’가 관전 포인트다.
일진머티리얼즈는 ‘뜨는’ 산업이며 일진디스플레이는 ‘지는’ 산업으로 대조된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처음부터 구리박(동박) 제조법을 개발한 오래된 기업이다. 1984년 설립됐다. 그때 이름은 덕산금속이었고 1996년 일진소재산업으로 사명을 변경, 2010년부터 일진머티리얼즈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011년 코스피에 상장했다.
마이크로미터급(㎛)의 얇은 동박의 전통 사용처는 인쇄회로기판(PCB)이었다. 요즘에는 2차전지 음극 기판(음극집전체)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자동차의 에너지원이던 내연기관을 전기가 대체할 것이며, 그에 따른 2차전지의 폭발적 수요가 예상된 까닭이다.
동박 제조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동종기업인 SK넥실리스의 M&A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LS그룹(LS엠트론)이 2018년 사모펀드 KKR 측에 동박 사업을 팔 때 가격은 3000억원이었다. 그리고 2년만인 2020년 KKR이 SK그룹(SKC)에 되팔 때 몸값은 1조1900억원으로 거의 4배가 됐다.
사실, 일진머티리얼즈 자체만 봐도 알수 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최근 시가총액은 지난 10년 동안 6배 가량 커졌다. 2011년 3월 상장 당시 공모가 기준 일진머티리얼즈의 시가총액은 5800억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최근 시가총액은 3조5000억원 수준을 보이고 있다. 특히, SK넥실리스의 M&A 시기에 빵 커졌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그룹 전체 매출과 자산에서 30% 가량을 차지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진그룹 전체 매출액은 2조141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기간 일진머티리얼즈의 매출액은 6889억원을 기록했다. 작년말 기준 일진그룹 전체 자산은 5조2710억원, 일진머티리얼즈는 1조7536억원이었다.
일진그룹은 일진머티리얼즈를 왜 팔까. 아니, 잘못된 질문이다.
일진그룹이 파는게 아니라, 일진그룹 둘째 아들이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를 팔려고 내놓았다. 일진그룹 둘째 아들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이사회 의장과 일진그룹을 으레 하나로 묶는 건 조금 어색하다.
창업주 허진규 그룹 회장이 이미 장남 허정석 그룹 부회장에게 일진그룹 대부분을 물려준 게 2000년대 후반이다. 일진파트너스(일진캐피탈)와 일진홀딩스(일진전기)를 통한 그룹 승계 작업이 그때 마무리됐다.
승계 과정에서 둘째 아들 허재명 의장은 일진머티리얼즈를 받았고, 지금까지 키워왔다. 일진머티리얼즈 내 지분정리가 얼추 끝난 2006년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이사(전무)에 올랐다. 2007년 부사장, 2010년 사장으로 직급을 높였고 2011년 상장 이후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만들었다.
동시에, 2002년부터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이사를 맡아 상장까지 함께 했던 김윤근 전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대표는 허 의장의 아버지인 창업주 허진규 그룹 회장 사람이었다. 김 전 대표는 아버지 허 회장보다 10살 아래고, 둘재 아들 허 의장보다는 21살 위다.
둘째 아들(허재명)의 행보는 홀로서기일까? 그렇게 해석할만한 구석은 많다.
규모가 있는 기업 오너가에서 차남의 일탈(?)은 종종 있는 일이다. 보통은 아버지와 장남에 대한 오랜 반감에서 비롯된다. 이때, 아버지와 장남은 종종 한 세트가 된다. 경영권이 장자에게 넘어가는 데 대한 서운한 감정이 홀로서기(독립경영)와 같은 일탈의 동력이 되곤 한다.
일진머티리얼즈를 매물로 내놓은 허재명 의장의 행보도 그런 '일탈'로 보아야 할까?
허재명 의장의 아버지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은 젊은날 사업을 일으켜 큰 부자가 됐다. 1940년생 허진규 회장은 연나이 44세이던 1984년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82세인 올해까지도 40년 가까이 회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허 의장의 형인 장남 허정석 그룹 부회장은 허 의장보다 두 살 위다. 올해 장남 허정석 부회장이 53세, 차남 허재명 의장이 51세다. 장남 허정석 부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차남 허재명 의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아버지 허진규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막내이자 둘째 아들 입장에서는, 비록 여자 형제보다야 훨씬 큰 사업을 물려 받았다하더라도 불편할 수 있다. 허진규 회장 슬하 2남2녀의 나이는 장녀 허세경(1967), 차녀 허승은(1968), 장남 허정석(1969), 차남 허재명(1971) 순이다.
허재명 의장은 어쩌면, 아버지에게 자신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고자 일진머티리얼즈를 열심히 키워왔는지도 모르겠다.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이사에 오른 2006년 허재명 의장의 나이는 35세였다.
일진머티리얼즈 경영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상장 다음해인 2012년말에 공장에 큰 불이나 당시 전체 자산(4419억원)의 14%에 해당하는 630억원대 손실을 입기도 했다. 또한, 일진머티리얼즈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었다.
지난 6월 일진머티리얼즈는 삼성SDI와의 8조5000억원대 대형 장기 공급계약을 공시했다. 삼성SDI는 2차전지 생산에 필요한 동박의 60%를 일진머티리얼즈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2030년까지의 포괄적 공급계약으로, 공급물량에 따라 금액은 최대 10조원까지 예상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와 삼성SDI의 계약은 주가에 내재된 미래가치를 일부 가시화한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작년말 기준 PER(주가수익배율)는 50배 수준이다. 코스피 시장 평균 PER는 10배이니 현재 주가에 평균보다 다섯 배의 미래 가치가 반영됐다고 볼수 있다. 이유는 ‘뜨는’ 산업인 2차전지 관련 주식이기 때문이다. 동종 기업인 솔루스첨단소재의 PER는 무려 200배 정도다.
경영에서는 할만큼 했다는 판단에서일까, 작년 3월 허재명 의장은 대표이사(양점식 대표와 공동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6년 대표를 맡은지 15년만이었다.
허 의장이 물려나며 1년간 정병국 대표가 양점식 대표와 공동대표를 맡았었다. 정 대표는 일진그룹이 2017년 사업개발실장(사장)으로 영입한 인물이었다. 현재는 양점식 단독 대표 체제인데, 서울대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딴 1959년생 양점식 대표는 아버지 허진규 그룹회장 사람으로 분류된다.
일진그룹 내 계열사 일진하이솔루스도 허 의장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수 있다.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한 일진하이솔루스는 현대의 수소전기차 넥쏘의 수소연료탱크를 단독 공급하고 있다. 690기압의 고압을 견디도록 설계됐다. 수소전기차는 고압수소와 대기의 산소간 화학반응을 통해 얻은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수소전기차와 일반적으로 전기차라고 부르는 리튬이온 전기차는 시장 확산속도에서 아주 선명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리튬이온 전기차는 신생과 기존 완성차 회사할 것 없이 모두 뛰어들어 기술개발을 하고 있는 반면, 수소전기차를 제대로 하는 곳은 국내 현대자동차와 일본 도요타 둘뿐이다. 일본 혼다는 수소전기차 사업을 접는 수순이다.
리튬이온 전기차가 다가올 미래로 눈에 보인다고 한다면, 수소전기차는 ‘과연 올까’하는 의문을 아직 떨치지 못했다. 연간 판매 대수만 해도 작년 기준으로 400배 이상 차이난다. 그리고 이 차이는 당분간은 커질게 분명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간한 ‘2021년 주요국 전기동력차 보급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전기동력차 판매대수는 666만대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만5500대만이 수소전기차였다.
일진하이솔루스의 PER는 130배 정도다. 시장에서는 아직 수소전기차에 대한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가총액은 1조원 초반 수준이다.
일진그룹은 한국복합재료연구소의 수소 용기 기술을 이전받아, 2012년 신설법인 일진복합소재(일진하이솔루스)를 통해 수소연료탱크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일진다이아몬드가 100% 자회사 일진복합소재에 초기 출자한 금액은 90억원이었다.
일진그룹이 초기 출자금액 90억원 짜리 계열사를 10년 만에 시가총액 1조원 넘는 회사로 성장시킨게 일진하이솔루스다.
정리하자면, 일진그룹 둘째 아들의 행보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만큼 보여줬고 이미 오래전 계열분리 수준의 승계작업이 끝났지만, 어쨌든 올해 초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일진그룹으로 한데 묶여 외부에서 볼 때 그룹(수소전기차)과 다른 노선(리튬이온전기차)을 걸어가야 하는 등 여러 부담과 불편에서 나온 결정으로 보인다.
또한 일진그룹 내에서 창업주 허진규 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상당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허진규 그룹 회장은 2019년부터 일진머티리얼즈로부터 ‘그룹회장’ 직위로 5억원 이상의 급여를 받아왔다. 2019년 10억원, 2020년 5억원, 2021년 7억6000만원을 받았다. 해당 기간 일진머티리얼즈에서 공시한 임원 현황에 허진규 그룹 회장의 이름은 없었다.
매각 대상으로 나온 일진디스플레이의 최대주주는 24.6% 지분을 보유한 허진규 그룹 회장이다. 일진디스플레이는 일진그룹 상장 계열사 가운데, 아들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허진규 회장이 지배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회사다.
일진디스플레이 매각 지분 43%에는 일진머티리얼즈의 동의가 필요하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디스플레이 지분 11.2% 지분을 가진 2대 주주다. 차남 허재명 의장이 최대주주인 일진머티리얼즈의 동의 하에, 아버지 허진규 회장이 최대주주인 일진디스플레이의 매각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진머티리얼즈 매각이 끝나면, 허재명 의장은 조단위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허 의장의 일진머티리얼즈 지분율은 53%다. 3조5000억원 수준 일진머티리얼즈 시가총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 한다면 매각 금액은 최소 2조원 중반에서 어쩌면 3조원대까지도 추산된다.
그늘 짙던 가업 승계에서 벗어나려는 일진그룹 둘째 아들의 앞으로 행보가 어떻게 될것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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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 넘은 것 같은 소식이 없네요.